[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20세기 어머니' 101세 이석희 할머니
조선말 명문가 출신 신여성
큰 딸이 국내 첫 여성대사
"그때가 북아현동에 살적인데, 옆에 댁인가 앞에 댁인가 인호보다 한 살 더 먹은 남자애가 살았어. 그런데 이쁘게 입혀 가지구 이화대학 부속유치원에 다니는데 부러울 수밖에. 그래 인호도 유치원 가게 될 나이가 되니까. 내가 유치원 원서를 얻어다 놨다. 했더니 우리 시아버님이 "유치원 보낼래?" 하시면서 걱정이 나시는 거여. 가뜩이나 일제 강점에 유치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그래서 못 보냈지 뭐. 얼마나 그때 속으로 짠하드라구."
"어떤 집이 남자가 외도를 해가지고 아이를 낳았는데, (애기를) 데려와버렸어. 그런데 그 주인아주머니가 사람이 마음씨가 착해. 그래가지고 애가 아프거나 그러면 방물장사를 시켜서 친엄마에게 기별을 해가지고 와서 애기 보고 가라고. 그런 거를 내가 어려서 숙명여학교 다닐 적에 귀로 듣고 보고 살았어."
일제강점기에 첫째 딸을 유치원에 보내려고 했으나 시아버지의 만류로 포기했던 엄마의 아쉬운 심경, 변변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방물장사가 메신저 역할을 했던 풍경이 한 여성의 입에서 생생히 묘사된다. 1914년 태생으로 지난해 100세를 맞이한 한 여성의 구술생애사의 일부다.
'20세기 어머니-이석희의 삶과 근대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최근 발간된 보고서에는 이처럼 이석희 할머니(사진)의 전 생애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할머니는 조선 명문가에서 귀하게 자란 무남독녀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자, 향촌(鄕村)의 반가(班家, 양반의 집안)로 시집간 며느리였다. 또 여섯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노년에는 쉰명에 가까운 손자와 증손자를 두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할머니의 큰 딸이자 국내 첫 여성대사를 역임한 이인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노친을 설득해 성사될 수 있었다.
보고서에는 한국 근대사 속 전통적 신분제도 변화 양상, 여성의 자녀 교육에 대한 자세, 여성 생활의 변천사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 1946년 친정 어머니가 이 할머니에게 보낸 한글 편지에는 "회충약도 먹지 않게 조심시키고, 먼 데 다니지 말고, 뭐든 이고 다니지 말라"며 아기를 임신한 딸을 염려하는 모정이 구구절절 느껴진다. 이 할머니의 조부와 아버지의 삶을 통해 조선말 우국충정이 강했던 양반관료들이 식민지 시기를 어떻게 겪어냈는지, 물밀듯 밀려든 근대의 바람을 어떻게 마주했는지 등 근대사의 이면도 담겨있다. 보고서는 박물관 홈페이지(www.nfm.go.kr) 발간자료 원문검색 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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