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가슴의 수밀도
수밀도는 두 개
한 손에 잡으면
조금 넘칠까 말까한/크기
껍질을 벗기기도 전에
두 손은 함빡 젖는다
■ 잘 부풀어 오른, 부드럽고 촉촉한 복숭아에서 여인의 C컵 가슴을 떠올린 시인은 이상화였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고 '나의 침실로'에서 부르짖지 않았던가. 복숭아에 맺힌 이슬과 가슴에 맺힌 이슬이 오버랩되면서 한껏 야한 상상을 불렀던 그 구절에서, 수밀도는 자유롭기 어렵다. 나태주는 전봉건의 시 '유방'에서 수밀도를 빌렸다. "수밀도는 내 손에 넘친다/솜구름이 지나가면서/금의 바늘로 건드린다"에서 여인의 가슴을 가득 감아쥔 영상을 만들어 냈다. 그냥 물기 생생한 광고 비주얼처럼 그려 냈던 이상화의 수밀도보다, 사내의 손이 범접한 동영상으로 진화시킨 전봉건이 한참 더 야하다. 나태주는 거기서 그 넘칠까 말까 한 크기와 손에 전해져 오는 물기를 더함으로써, 사랑스러운 육체를 애무하는 상상력을 고조시켜 놓았다. 여인의 터질 듯한 가슴과 그것을 감싸 쥔 사내의 손이, 왜 이토록 현기증이 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욕망의 근원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수밀도 두 개를 쥐고 미친 듯이 황홀해하도록 만들어 놓은 이는 누구였나.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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