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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빈섬의 '나무예수'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7초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고결한 최후에 인간은 고개 숙여 한 신앙을 이뤘다. 하나, 보지 못하였구나. 그를 껴안고 있는 등 뒤의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꼿꼿한 육신을 죽여 가로로 뉘어 팔을 만들고 세로로 세워 머리와 다리를 만든 열십자 나무는 부활의 운명이었다. 인간의 팔은 나무의 팔에 묶고 인간의 몸은 나무의 몸에 묶어 비로소 인간은 초월하고 나무는 영원히 인간에게 묶인 형상이 되었다. 들리는가, 인간을 안고 우는 나무의 울음소리가. 카메라 렌즈의 심도를 바꿔 들여다보면 비로소 보인다. 피얼룩진 인간을 영원히 떠받치며 그 향기로 고통을 씻는 향긋한 나무예수.


망월사(望月寺) 가는 길 폭우에 쓰러진 늙은 참나무, 놀란 뼈 하얗게 드러냈다. 매달린 잎들 생의 꿈 덜깬 청복엽(靑複葉)의 눈 껌벅인다 서서 살고 서서 죽는 붙박이의 저주 끊었는가. 한 생애의 장좌불와(長坐不臥) 그 꼿꼿한 믿음조차 놔버리고 벼락 맞은듯 벌렁 누웠는가. 그 귓전에 불어난 물소리 흐르고 코박힌 가지에 흙향기 감돈다. 썩어가는 일만큼 설레는 영원이 어디 있으랴. 지척에 절간을 두고 제 가지에 가려 못봤던 그 낮달 망월(望月)하며 평생 가려운 속 시원해졌을 이제야 참 나무 되었구나.


어떤 목숨은 괴로움 만으로 속살이 된다. 추울 때 더울 때 이를 악물고 몸을 뒤튼 굳은 살로 자기 안에 시계를 품는다. 만지면 한 생애 뱅뱅 돌아 걸어온 길들이 칭칭칭 감기는 목리(木理). 가도가도 제자리였다, 헛걸음으로 불린 맴맴. 자기를 이기느라 나날이 할복한 자국. 속없는 각질만 켜켜이 늘려놓았다. 향그런 넋의 중심에 사납게 돌을 던진 이는 누구인가. 목숨 내내 느린동작으로 번져나간 필생의 파문.


이빈섬의 '나무예수'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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