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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설태수의 '얼굴, 도망가다' 중에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9초

고속버스 안,/앳된 아가씨가 거울을 보고 또 본다./자다가 깨어나면 보고/창밖을 잠시 보다가는 거울을 든다./멀리 가까이 거울을 이동시키며/요모조모 살펴보고 있다./입술 다듬고 눈썹도 손본다./얼굴이 자꾸 도망가는 모양이다./자꾸 변해가는 얼굴임을/진작 알아차렸는지/거울로 자주 확인하고 있다.(....)


설태수의 '얼굴, 도망가다' 중에서


■ 신체엔 여러 부위가 있지만, 얼굴의 권력 앞엔 아무도 못 까분다. 평생 몸에 비정규직 종노릇하는 인간이, 그 잡역 중에 90% 이상은 얼굴에 충성하는 일이다.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몸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하더라도, 얼굴에서 탈이 생기면 모든 호감들의 지원은 꽝이 되는 판이니, 이 독재자 얼굴님을 괄시하기는 애당초 어렵다. 고속버스 안에서, 내내 거울을 들고 입술을 삐죽거리거나 눈을 흘겨 뜨고 앞으로 드리워진 실머리를 살그머니 넘기며 앞 옆 얼굴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들여다보는 소녀를 훔쳐보는 남자의 시 한 편이 실감 난다.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쯤은 아랑곳 않고 오직 자신의 얼굴에 몰입한 한 영혼의 삼매경. 태어나면서 복불복으로 조물주에게 부여 받은 얼굴이지만, 평생 그것의 개선명령을 준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 불평도 없이 분노도 없이 저토록 제 얼굴에 봉사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예쁘다'는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 살면서, 인간이 이성과 분별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허풍이며 위선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린 여인의 저 모습이 어쩌면 측은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생의(生意)가 귀엽게 보이기도 하지 않는가. 젊음은 버스 창에 비친 반나절의 햇빛처럼 훌쩍 떠나는 것이니, 빛 좋을 때 많이 들여다보려무나.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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