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시선을 끄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업의 대다수가 논의 중인 경제민주화 내용이 과도하며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타깃인 대기업의 그런 반응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중소기업까지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나타나 그 속내와 배경이 궁금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2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회 기업 정책 현안에 대한 기업 의견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입법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에 대해 '과도하다' 44.7%, '재고해야 한다' 27.2%로 부정적인 의견이 71.9% 였다. 대기업의 부정적 응답은 78.5%에 달했다. 특기할 점은 중소기업의 부정적인 응답이 65.4%로 대기업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세우자는 취지의 경제민주화는 중소기업의 입지를 확보해 주자는 뜻도 강하다. 두 손 들어 환영해야 할 중소기업이 경제민주화를 걱정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방향을 잘못 잡았거나, 중소기업 쪽의 오해가 있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도 아니라면 이번 조사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은 가장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꼽았다. 부품ㆍ하청업체가 많은 중소기업의 사업 기반을 떠올리면 이 같은 조사 결과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한 내부 거래는 중소기업에 타격을 주는 대표적인 대기업 횡포가 아닌가. 그런데 많은 중소기업이 오히려 이에 대한 규제를 걱정하고 반대한다는 것이다.
조사의 허술함이 눈에 띈다. 표본은 대기업 149개사, 중소기업 153개사다. 조사 방법은 전화와 팩스다. 이 정도 숫자의 기업 반응이 다양한 분야, 수많은 중소기업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지, 전화와 팩스로 성의 있게 대답했을지 의아스럽다. 중소기업의 생각은 업종이나 대기업과의 연관성, 기업의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면서 당사자인 기업의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 이번 상의 조사도 참고할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경제민주화를 놓고 쏟아지는 다양한 소리를 어떻게 왜곡 없이 수렴해 반영하느냐다. 대화도 필요하다. 단편적인 반응이나 왜곡된 요구에 휘둘리면 안 된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정부나 정치권이 귀를 더 열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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