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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꿈의 연애(煙愛)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9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주변의 강압에 못 이겨 몇 차례 담배를 끊어야 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외압에 굴복했다는 자괴감과 초심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좀처럼 발설하지 않는 내 삶의 어두운 기억 가운데 하나다.


그래선지 가끔 꿈을 꾼다. 때론 악몽이기도 하고, 때론 길몽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꿈을 꿨다. 야경이 멋진 20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나는 술을 마시고 있다. 음식도 좋아하는 것만 있고(아무리 많으면 뭐하랴, 입에 맞는 게 없으면) 함께하는 이들도 최상의 멤버다.(술과 음식이 좋으면 뭐하랴, 함께하는 이가 마음에 안 맞으면)

문제는 역시 담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는지, 에스컬레이터로 왔는지, 아니면 날아올랐는지,(꿈속이란 걸 명심해주시길) 아리송하지만 분명한 건 담배를 피우려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요즘 세태가 어찌나 엄한지 꿈속에서조차 '실내 흡연'은 감히 꿈도 못 꾼다) 욕망을 억제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는데 누군가 따라오라 손짓한다. 거역하기 힘든 힘에 이끌려 따라가 보니 그녀가(성별이 모호한데 왠지 여성일 듯) 홀연 한쪽 유리창에 있는 문을 열고 유유히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게 아닌가. 그리곤 유유자적 허공에서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것이다.


창밖으로 나갔는데 왜 떨어지지 않는 거지, 깜짝 놀라 유심히 살펴보니 문밖에 약 5m의 유리 통로가 있는 게 아닌가. 아! 정말 꿈에 그리던 완벽한 흡연 장소였다. 발아래 유리바닥을 통해 밑이 훤하게 보이는 통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천장이 뚫려 있어 바람이 불면 몸이 휘청거렸지만 1층까지 내려가지 않는 게 어디인가. 의기양양 그녀와 둘이 20층 높이의 뻥 뚫린 공간에서 끽연의 자유를 만끽하다 꿈에서 깬 게 불과 몇 주 전인데.


엊그제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으니, 서울 한복판에서 꿈과 흡사한 풍경을 조우한 것이다. 도산공원 뒷골목 퓨전 한식당에 있는 흡연 장소였는데 유리가 아니라 철제로 돼 있고, 20층이 아닌 3층이었지만 끽연의 편리함과 자유로운 느낌은 똑같았다. 그곳에 서서 허공에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문득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한사코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는 거로구먼.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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