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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용문사행 버스기사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5초

시골버스 운전기사답지 않은, 좀 까칠한 얼굴이었다. 삐죽삐죽 선 잿빛 머리카락이 성질을 말해주는 듯하다. 눈은 큰 데다 깊어서 퀭한데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짙어서 병색이 느껴진다. 말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이다. 잿빛 정복의 뒷모습이 마치 굳은 바위처럼 뻣뻣해 보인다. 좁지만 왕복차선이 있는 도로였다.


그런데 이쪽 길의 정류장이 아니라 건너편 길의 정류장에서 허리가 고부라지고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고 서 있다. 이 경우 서울의 버스라면 어떻게 할까? 길 건너편의 승객을 위하여 버스를 세울 기사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용문사행 버스는 멈춰 섰다. 기사는 차창을 열더니 소리친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읍내로 가시는 거예요?"
"아니, 절에…." 할머니 대답에 기사는 다시 소리친다. 
"그럼 이쪽으로 오셔서 타야 돼요. 그 정류장은 읍내 나가는 버스 타는 곳이에요."


할머니는 뒤뚱뒤뚱 이쪽으로 걸어온다. 버스는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버스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 기사, 보기와는 좀 다르다.


조금 더 달리다가 어느 정류장에서 멈춰 선 버스. 기사가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내려간다. 기름이 없나? 기계 고장인가? 걱정스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는 슈퍼 앞의 개집으로 가더니 검둥이 한 마리를 덥석 안아 올리고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말 없이 잠깐 개를 품에 안더니 내려놓고는 버스로 뛰어온다. 뒤에 앉은 승객이 묻는다.


"기사님 댁 개에요?" "아니에요." 
"그럼, 왜 갑자기 그 개를…?" 
"아, 예. 얼마 전 그 개집에 있던 놈을 버스가 치었어요. 갑자기 튀어나왔는데 어찌할 수가 없었지요. 처음 낸 사고였는데…. 그만 죽고 말았어요. 그 개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그럼, 지금 저 개는요?" 
"그 개가 죽고 나서 주인이 다른 개를 한 마리 사왔더군요. 가끔 틈나는 대로 저 녀석을 안아준답니다. 그전 개에게 사과할 겸 해서…."


마음이 왠지 짠했다. 퀭한 얼굴, 그 버스기사 생각이 가끔 난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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