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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내 분노에 대한 분노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2초

골목에 접어들 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일방통행 골목 안 풍경도 평소와 다름없다. 노래방과 호프집, 설렁탕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길가에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가 빼곡하게 주차돼 있다. 행여 옆에 있는 차량과 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연신 백미러를 보며 조심조심 차를 몰아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길이 막힌 걸 알았다.


거참, 차를 돌릴 공간은 없고, 간신히 헤쳐 온 50m가 넘는 미로를 후진으로 다시 빠져나가야 하나, 생각하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골목을 가로막은 주범은 커다란 사다리차였다. 치워달라고 할까(사다리차도 바퀴는 있으니 굴러가지 않을까?), 싶어 유심히 살펴보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사다리차는 인근 개업식당 2층에 간판을 달기 위해 서 있는 것일 뿐이고 도시가스 배관을 묻기 위해 약 2m 너비로 길을 파헤쳐 놓아 아예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낭패가 짜증으로, 이어 분노로 바뀌는 데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도로를 파헤쳐놓고 공사를 하려면 누군가 일방통행 입구에서 돌아가라고 안내를 해주거나, 그게 안 되면 차량통제 입간판이라도 세워놔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1초도 안 걸렸다. 즉각 차문을 열고 튀어 나왔고, 거침없이 공사장으로 달려갔고, 따따부따 따지기 시작했고, 약간의 거친 언사가 오가며 언어의 충돌이 있었고, 마침내 "죄송하다"는 답을 이끌어냈지만 진심이 실리지 않은 아주 상투적인 사과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인근 경찰서 교통과에 전화로 사태를 신고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고, 이어 사무실로 들어와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아, 왜 나는 이 나이에도 이처럼 감정통제가 안 되는 것일까?)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당신 차는 어디에 두고 왔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게 진짜 문제군요."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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