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에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다. 낮술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낮술의 희열과 흥분에 대한 얘기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을 온전하게 살아가려면 낮술에라도 취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내 주장이다. 요는 무언가에 미칠 수 있게 해주는 낮술이다.
과학적으로도 낮술은 밤술에 비해 빨리 취한다고 한다. 우리 몸의 신진대사가 낮에 훨씬 활발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알코올의 흡수도 낮이 더 빠르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허기진 배에 털어 넣는 소주 한잔의 짜르르함은 그 자체로 오후의 활력소다.
회사 근처에 있는 복집에서 지인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좋은 사람끼리 모였는데 반주가 빠질 수 없다. 복집에선 히레(ひれ) 소주가 제격이다. 히레 소주란 소주를 주전자에 부어 따근하게 데워서 복어 지느러미를 태워 넣은 술이다. 히레 소주를 만드는 데도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데, 그건 히레 소주의 맛이 각 복집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어쨌든 이 술을 마실 때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술을 털어 넣는 타이밍과 호흡을 잘 맞추지 못하면 훅 하고 올라오는 술기운에 사레가 들리곤 한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게 된다.
"인생 뭐 있나. 건강이 최고지." "서로 건강들 하자구." 술이 한 순배 돌았다. "큰애가 지금 고2인가." "아이구 회사 오래 다녀야겠네." 술이 두 잔째 돌았다. 석 잔째가 막 돌아가는 순간 일행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한다. "술맛이 좀 이상한데?" 그러더니 술 주전자 뚜껑을 들어 냄새를 맡아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술맛이 정말로 밍밍한 것 같다. "어떻게 된 일이오?" 종업원을 불러 물었다. 종업원이 술 주전자 안을 들여다보더니 얼굴이 하얘진다. 얘긴즉슨 소주를 데워야 하는 주전자에 소주 대신 물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끓인 물에 복어 지느러미를 태워 넣고 나서 이를 술로 알고 먹었다는 얘기다. "하하하" 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물을 먹고 취기를 느꼈으니 원효 대사가 먹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해골물이 따로 없다.
끓인 물 두 잔에 취했으니, 세 잔이면 부모도 몰라볼 뻔했다. 백 배 사죄하는 주인 덕에 술은 공짜였다. 물은 먹었지만 낮술 먹은 것처럼 즐거웠던 '낮물'의 추억이다.
<여하(如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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