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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바티칸의 새 바람과 한국 종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04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수십 명의 남성들 속에 흰색 옷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형형한 눈빛의 한 여성이 눈길을 끄는데 이 그림 속 유일한 여성인 이 여인은 그리스의 천재 수학자 히파티아다. 그녀는 그리스 문명 최후의 불꽃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테네 몰락 후 그리스 이성의 집결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마지막 학자였던 그녀는 지적이었고, 그 지성만큼이나 아름다웠으며, 그 미모만큼이나 기품이 넘쳤다. 진선미의 육화(肉化)와도 같았다. 남자 대신 진리와의 결혼을 택해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에 대해 한 제자는 "도시 전체가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를 숭배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지성과 이성의 여신은 참으로 처참한 죽음을 맞고 말았다. 415년 도시의 기독교화를 기도하던 기독교 수도사 수백 명이 그녀를 교회로 끌고 가서는 발가벗기고 살을 도려냈으며 사지를 찢고 불태웠다. 이미 그 몇 년 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불을 지름으로써 지혜의 보고를 불태웠던 기독교 군중들은 이젠 이성의 살아 있는 정신을 살해하고 말았다. 사순절 기간 중에 자행된 잔혹한 학살극이었다. 그녀가 스러져간 그 순간, 그리스 지성과 문명도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이성에 대한 광기의 승리였으며, 문명과 지성의 패배였다. 그러나 그건 무엇보다 기독교 자신의 패배였다. 영성의 신앙에서 광신으로 전락한 기독교 자신의 패배며 추락이었다.


맹목적 신앙의 만행의 기념비라 할 이 참사는 종교가 지성을 포기할 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반면교사로 보여줬다. 1500여년이 지나 미국의 부시에게서도 봤듯이 신앙을 내세워 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업은 오히려 증오의 이름으로 행해진 악업보다 끔찍한 것이다. 역사는 광신적 신앙이 저지른 죄업이 온 대양의 물을 가져와도 씻을 수 없음을 증언한다.


마침 새로운 교황을 맞은 올해는 근현대 가톨릭 역사상 최대의 쇄신이 이뤄졌던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의 타계 50주기다. 그는 순박하고 겸허한 품성으로 가톨릭의 과오를 반성하며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즉위명으로 택한 프란치스코처럼 새 교황은 순명과 청빈의 태도로 많은 기대를 낳고 있다. 그가 노쇠한 바티칸과 기독교에 새바람을 가져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청정한 혁신의 바람이 '종교 없는 종교국가' 한국에도 불어오길 기대한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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