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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속눈썹 한올의 반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6초

#첫째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왼쪽 눈이 불편하다. 딱 짚어 말하긴 힘들지만 뭔가 이물질이 눈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따금 눈동자를 날카로운 것이 콕콕 찌르는 듯 따끔거린다. 아주 고약하다. 다래끼가 나려나 싶어 거울 앞에서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말아 올려 안을 들여다봤지만 염증 조짐은 없다. 그래도 싶어, 민간처방에 따라 속눈썹을 몇 올 뽑아 봤지만 개선되지 않는다.


#둘째 날. 증상이 더 심해졌다. 왼쪽 눈을 거의 뜰 수가 없다. 따끔따끔 눈동자를 찌르는 빈도가 잦아지고 그 정도도 한결 강하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한다. 아, 이제 한쪽 눈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그나마 눈이 두 개인 게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셋째 날. 통증을 견디다 못해 결국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의사가 뭐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게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은데, 뭐가 문제가 된 걸까? 눈질환은 비뇨기 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데, 혹시 방탕한 생활이 원인일까? 일테면 밤에 몸을 함부로 굴린 데 대한 징벌성 질환인가? 불길한 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머리가 훤히 벗겨진 60대 의사가 금테 안경 너머로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첩모난생'입니다."


아, 어찌하여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하는 것일까? 사소한 잘못은 여러 번 있었지만 천벌을 받을 만큼 잘못한 건 없는데, 어쩌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괴질에 걸린 걸까? 하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는데, 이런 설명이 이어진다.

"사람의 몸은 신기해서 속눈썹은 늘 밖으로 약간 휘어져 나오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연유인지 이따금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자라는 속눈썹이 있지요. 그런 돌연변이 속눈썹이 눈동자를 찌르게 되는데, 이를 첩모난생이라 합니다."


어려운 병명에 비해 처치는 간단했다. 하늘의 이치를 거역한 속눈썹 몇 올 솎아내는 것으로 광명을 되찾았다.


위 3일간의 끔직한 체험은 벌써 30년이 지난 옛날 일인데, 요즘 불현듯 이런 의문에 빠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제대로 된 눈썹이었는지, 아니면 내 눈동자를 쿡쿡 찌르는 '첩모난생'으로 살았는지


글=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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