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를, 김윤아와 함께 동행한 사람과 백설희를 따라간 사람. 세대 차이를 나누는 훌륭한 잣대라고도 하지만, 나는 기꺼이 백씨 대열에 선다. '사람도 피고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라고 읊조리는 철학적인 김씨 필도 십분 황홀하지만, 연분홍 치마가 나풀거리며 펼쳐졌다가 옷고름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음 오그리는 열아홉 순정의 봄날에 댈 것은 못 된다. 특히 '휘날리더라'로 풀어헤치는 부분에서 목청으로 돋아나는 서러운 청승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조용필과 장사익은 사내이면서도 이 처연한 '휘날리더라'로 수많은 봄날을 애틋한 절규로 하늘거리게 하지 않았던가.
연분홍 치마가 꼭 시골처녀의 의상일 필요는 없다. 봄날 지천인 진달래와 철쭉이야 말로 하늘로 벌렁 나자빠질 만큼 사랑에 환장한 연분홍 치마가 아니던가. 바람이 불면 한들거리던 꽃자락, 끝내 제풀에 꽃잎이 통째 빠져나가 꽃술 대가리에 걸려 덜렁거리던 게 어디 한 둘이던가. 꽃이 이럴 지경이니 사람이 사람에 미치고 사랑에 넋나가는 것이 어찌 허물이겠는가. 이 노래의 절경(絶景)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에 있다. 희로애락이, 솟아오르는 정념과 꺼져내리는 비탄의 청룡열차를 타고, 세상에 둘도 없는 욕망과 비련을 순식간에 쓸어내린다.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아무 이유도 없이 샴쌍둥이처럼 몸과 마음이 함께 흐르던 날들을 돋을새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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