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최근 농협은 골판지상자 조합의 일방적 주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협이 전국적으로 골판지 상자 구매 대행사업을 확대해 영세 골판지업체를 죽이고 있다는 내용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이 진행하는 것은 구매 대행이 아닌 계약 대행 사업이다. 이를 통해 과수 농가들의 골판지 상자 구매 비용을 10억원이나 줄이기도 했다. 농협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악용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중앙회가 펴낸 '손톱 밑 가시 두번째 이야기'에는 이같은 억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중기중앙회가 전국 중소ㆍ소상공 업계의 불합리한 제도ㆍ관행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회원사로부터 사례를 취합해 만들었다. 지난 1월 첫번째 이야기에 이어 나온 두번째 이야기에는 400여건의 사례가 포함됐다. 하지만 일부 사례는 정부의 중소기업 챙기기에 편승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챙기려는 생떼여서 눈총을 사고 있다.
실제로 한 중소건설사는 시공하청사가 잠적해 공사대금 8000여만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하청을 준 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시공하청사가 중간에 돈을 가로채 사라졌지만 "대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3500만원을 지불했지만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소상공인은 청소년 탈선을 조장하고 영세기업의 영역을 침범한다며 대형마트에서 주류와 담배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형마트가 아닌 곳에서 판매해야 청소년 탈선을 막을 수 있다는 궤변에 가까운 주장인 것이다. 또 다른 중소기업인은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공장 준공 후 무허가 신축 건물을 짓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경영활동을 하다 법을 어기는 경우 사면해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생떼만 쓰면 다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최원락 한국경제연구위원은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손톱 밑 가시'는 환영해야 하지만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대못을 박는 것은 사회적 혼란만 낳는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는 사례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함량 미달' 주장이 섞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1차 때도 손톱 밑 가시 300여개 중 국무총리실에서 '수용 곤란'이라고 답해온 것이 41건에 달했다"며 "민원성이거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일단 받은 것을 빼고 전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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