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 같은 것들이/회청색 포장을 뒤집어쓰고/거푸집에 기대어 있다/다시 올 리 없는 사랑이/무슨 변명 같은 몸짓으로/비닐끈에 묶여 있다/진눈깨비 질척이는 밤/못 견디는 못 견디는 그리움으로/불숯덩이를 삼키고/서 있다
진동규의 '포장마차'
■ 원래 포장마차는 서양 영화에서 가끔 보던, 호화스런 마차이다. 그것이 어찌 하여 대한민국에 건너와서 길거리에다 포장을 쳐서 영업하는 저렴한 주점을 가리키게 되었을까. 처음에 이런 은유를 쓴 사람은 꽤 풍자적인 지식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포장마차가 뿜어내는 낭만적인 뉘앙스는, 포장이라는 얇은 가림막이 만들어내는 허술함에 있는 듯하다. 언제라도 무엇인가 뚫고 쑥 들어올 수 있는 잠정적인 차단 안에서 펼쳐지는 애틋한 평안같은 것. 그 임시 건물의 특징 때문에 음식이나 술의 값이 만만해지고, 거기에 머무는 이들의 생의 고단함이 풍겨나거나, 어깨를 붙이고 앉은 가난한 연인의 상심이 묻어나온다. 그런데 이 시인은 영업 끝난 포장마차가 뱀허물처럼 휑하니 놓인 풍경으로 우릴 이끈다. 비닐끈에 묶인 포장들에서 첫사랑을 발견하는 건, 그것이 쳐놓은 공간 속에 있었던 어느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따끈따끈한 국물을 끓여내던 불숯덩이는 오래전 재가 되어 사라졌겠지만, 진눈깨비 맞는 포장마차의 껍질 안에는 사랑을 잉태한 그 불이 여전히 타고 있다. 변명하고 싶다, 오래전 여자여. 그때 그 한 잔을 부딪치고 보낸 마음은, 삐걱이는 의자에 앉은 객기어린 청춘의 어리석음이었음을. 버려진 포장마차같은 내 허름한 기억의 집에 그대 다시 돌아와, 숟가락 부딪치며 오뎅국물 후루룩 다시 들이켰으면.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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