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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행숙의 '숲속의 키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0분 41초

두 개의 목이/두 개의 기둥처럼 집과 공간을 만들 때/창문이 열리고/불꽃처럼 손이 화라락 날아오를 때/두 사람은 나무처럼 서 있고/나무는 사람들처럼 걷고, 빨리 걸을 때/두 개의 목이 기울어질 때/키스는 가볍고/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얹을 때/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 나는 키스의 쓸모없음, 이유없음, 결실없음에 주목한다. 키스가 주는 잠깐의 달달함, 망상에 가까운 기쁨의 충일, 관계에 대한 터무니없는 신뢰감의 증대는 어쩌면 5%의 효용이다. 나머지는 다 자신도 모르는, 당신도 모르는, 조물주의 음모다. 왠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없고 이보다 더 다급한 일이 없고 이보다 더 음탕한 일이 없고 이보다 더 짜릿한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대화나 성적인 행위처럼 구체적인 무엇이 도출되거나 생산되는 일도 없다. 필요가 아닌 뿌리깊은 충동이 있다. 구강으로 이어진 통로 속에 천국의 피리 소리같은 게 있다. 기쁨과 슬픔과 쾌락과 고통이 막히고 뚫리면서 깊이깊이 이어지는 무한한 열락이 있다. 키스에는, 완전한 편안함이 앉아있는 듯 하다. 모태와 연결되어 있을 때의 그 걱정 없음, 무한한 생의 피로감이 잠시 물러나고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는 부드러운 포옹이 다가온다. 김행숙은 인간의 입술마다 널려있는 수십억원 짜리의 호화주택을, 파스텔톤의 풍경화 한 장으로 그려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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