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쳐 주시지 않아도/처음부터 알았습니다/나는 당신을 향해 나는/한 마리 순한 나비인 것을//가볍게 춤추는 나에게로/슬픔의 노란 가루가/남몰래 묻어있음을 알았습니다//눈 멀 듯 부신 햇살에/차라리 날개를 접고 싶은/황홀한 은총으로 살아온 나날//빛나는 하늘이/훨훨 나는/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해인 '나비의 연가' 중에서
■ 나는 어느 날 나비의 날개를 붙잡았다가 놓아준 뒤 내 엄지와 검지볼에 묻은 노란 가루를 들여다보았다. 콩고물같이 묻어있는 저 가루들을 내게 남긴 뒤 나비는 날아갔다. 나는 물었다. 왜 조물주는 나비를 만들면서 강력한 착색을 해서 안정감 있게 날개를 짓지 않고, 저렇듯 가루를 흩뿌려 뒀을까. 저 날개가 어딘가에 부딪치면 화르륵 빛깔들이 다 털려 나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시인 이상은 버선을 벗어두고 떠났던 아내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화장은 있고 인상은 없는 얼굴로 아내는 형용(形容)처럼 간단히 돌아온다" 화장은 있고 인상은 없는 얼굴이란 말에서, 나는 나비의 날개에 분말로 뿌려진 빛깔의 의미를 언뜻 깨닫는다. 내가 소스라치는 건 저 '형용처럼'이란 표현이다. 저기엔 본질이 없는 얼굴, 본질 위에 잠정적으로 얹힌 덧없는 빛깔의 얼굴이 있다.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 같은 얼굴. 나비는 '꽃'처럼 명사가 되지 못한, 팔락거리는 형용사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이상국 기자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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