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굴참나무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고전문학관과 현대문학관이 한 판을 이루는, 그 속의 새움은 자신이 화석의 조종(弔鐘)이라고 하고/화석은 새움에게 그 초록 올올은 제 손으로 짜온 것이라고 타이르며/상하방에 나란히 동거한다//그 동상이몽이 굴참나무를 불멸의 시인이게 한다
김규성의 '봄 굴참나무'
■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과정은 비교적 그럴 듯 해보이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다. 겨울과 봄은 서로 닮은 구석이 없다. 죽음과 삶이 붙어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조물주는 인간의 항문과 성기 사이에서도 시를 쓴다. 인체의 폐기물처리장과 생명미사일 발사대를 그토록 근접하게 둔 까닭은, 인류를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과 탄생이 그토록 긴밀하게 이어지는 것임을 설파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이 시 참 기발하다. 고전문학관과 현대문학관이라니...어디 굴참나무만 그러랴. 한 인간 속에도 죽음과 기억과 역사를 노래하는 고전의 그윽한 방과 현실과 선택과 닥쳐드는 숨 가쁜 미래를 노래하는 잉크냄새 나는 오늘의 신문이, 동거하고 혼재하는 것이 아닌가. 늙은 봄 굴참나무처럼 다시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걷는다, 봄이 오는 길.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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