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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영화판 망친다" 서러운 작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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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교차상영 논란 후 조기종영..대기업 영화들이 영화관 잠식

"대기업이 영화판 망친다" 서러운 작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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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다른 나라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등 영화 제작사가 영화관을 갖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20세기 폭스나 워너브러더스 등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영화관을 갖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해놓고 있다. 강제적인 규제가 없으면 '작은 영화'들은 다 죽게 될 것이다. 대기업이 영화판을 망친다."(한 예술영화 배급사 대표)

한국 영화계의 신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2012년. 2편의 1000만관객 영화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 대상'이라는 경이적인 기록 이면에는 조용히 극장에 걸렸다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작은' 영화들이 있다. 최근 영화 '터치'로 또 한 번 교차상영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규제가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영화 제작에서부터 상영까지 모든 경로를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영화사의 영화관 독점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민병훈 감독의 영화 '터치'로 인해서다. 지난 8일 개봉한 이 영화는 영화관에 걸린 지 8일만에 종영을 선언했다. 처음 확보한 상영관은 97개관으로 같은 기간에 상영된 CJ E&M의 '늑대소년'이 800관 이상을 확보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마저도 관객이 적게 드는 오전이나 심야 시간대에 상영이 된 데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영관도 12개로 줄었다.

이에 민병훈 감독은 16일 "서울에 사는 지인이 '터치'를 보러 롯데부평 시네마까지 가서 봤다. 이게 말이 되냐"며 "관객에게 볼 권리가 있지만 나에게도 내릴 권리가 있다. 개봉 8일 만에 이렇게 불평등하게 상영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세상이 어디있나. 구걸하듯 극장에 하루 상영해서 과연 하루 몇 명이 '터치'를 보겠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민 감독은 '터치'와 관련 영화진흥위원회에 불공정 거래 신고를 넣어 오는 21일 조사 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영화사 '날개'의 관계자는 "영화관에서 상영 회차도 적었지만 시간표도 평일 오후 2시에 잡아놨더라. 평일에 그 시간대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영화가 입소문이 나면서 차근차근 관객을 더 모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상영관이 97개에서 12개로 줄어드니 어찔할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차상영 논란을 빚은 영화는 주로 대기업의 자본을 받지 못한 '작은'영화들이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CJ CGV나 롯데시네마 등의 대기업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하면 작품이 관객과 만날 기회조차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이달 말 개봉 예정인 한 저예산 영화의 배급사 관계자도 "현재 '늑대소년'과 할리우드 영화 '브레이킹 던 part2'가 상영 시간표를 꽉 잡고 있어서 끼어들 틈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논란은 지난 10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에도 똑같이 나타났다. '피에타'는 개봉 초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고생하다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소식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영화관에서 상영을 확대한 경우다. 당시 김 감독은 "여전히 멀티플렉스의 극장을 한 두 영화가 독점하고, 동시대를 사는 영화인들이 만든 작은 영화들이 상영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가도 받기 전에 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에타'는 결국 50만 관객을 돌파하고 개봉 4주차에 감독 뜻에 따라 대부분의 영화관에서 종영했다. 당시 김 감독은 "'피에타'가 극장에서 깨끗이 내린 이후, 그 자리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은 영화에게 상영기회가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에타' 이후에도 다른 작은 영화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문제는 영화관의 독과점을 막을 법적인 규제안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대형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20세기폭스, 유니버설 등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영화관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해 놓았다. '파라마운트 판결'은 미 법원에서 대형 스튜디오들이 영화제작과 배급, 영화상영업을 동시에 소유하는 것에 대해 독점금지법 위반이란 판결을 내린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같은 제도 장치가 미비하다. 지난해 말 기준 CJ와 롯데 등 국내 상위 5개사의 한국영화 배급 점유율은 97.7%로 거의 100%에 육박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개 영화관의 점유율은 82.5%였다. 지난 4월 영진위가 실시한 영화산업 공정성 인식도 조사에서도 영화산업 종사자 492명 중 86.6%가 '멀티플렉스극장이 스크린 수나 규모에서 자사계열 배급사 영화와 다른 영화를 불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외화 수입업자들은 더 힘들다.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수입해 들어와도 CGV나 롯데시네마를 뚫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대기업들이 자사 영화는 예매하는 시점부터 유리하게 적용하고, 특히 주말 시간표는 주요 시간 대 자사 영화들의 시간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있다. 게임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에는 영화단체장, 영화업계 대표, 정부 대표가 모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으로 저예산으로 만든 작은 영화도 영화관에서 최소 1주일 이상 상영할 수 있도록 상영기간을 보장하고, 배급사가 합의하지 않는 한 교차상영 등 변칙적인 상영도 하지 않는다는 게 주내용이다.


그러나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보니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진위 불공정행위 신고센터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면 공정경쟁환경조성특별위원회에서 심의 여부를 결정한다. 사안이 심각하면 영화관이나 영화사측에 시정 조치를 내리지만 법적인 강제나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추후 시정조치에 대해 개선이 되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로 넘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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