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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의 그림자.. '위대한 제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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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미국이 아직까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최강 군사대국이란 사실은 여전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세계 모범규준이었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오늘의 미국은 과거 10년 전의 그 미국이 아니다. 양당정치는 극단의 증오와 대립으로 변질됐고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경제성장의 발걸음은 더디기 짝이 없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판은 미국 대통령선거 전인 5일(현지시간) ‘위대한 국가의 몰락에 대한 기록’이란 기사를 통해 미국이 처한 현실을 조명했다.


대선 1주일 전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는 2012년 미국의 치부를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태풍의 직접적인 피해규모는 예전 ‘카트리나’ 등에 비해 월등히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몇 년째 미 동부 연안 해수면이 상승해 왔고 미국 본토에 상륙하는 허리케인의 수도 많아지는 추세였음에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대도시 뉴욕의 재난대비 수준은 형편없었다. 비교적 정확한 일기예보 덕에 태풍이 상륙하기 3~4일 전부터 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정작 모래주머니를 쌓아올리는 등 침수에 대비한 곳은 중요한 발전소나 병원, 터널 등이 아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고층빌딩 등이었다.

태풍으로 교통망이 마비되고 뉴욕 곳곳에서 수백만 명이 전기와 물, 난방이 끊긴 채 길게는 1주일이 넘게 살아야 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해 마련한 비상용 발전시설 등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연재해에 따른 불가항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사회기반시설이 태풍피해조차 제대로 이겨내지 못할 정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도로·교량·터널·공항 등의 인프라 투자에서 유럽보다 돈을 덜 쓰고 있다. 사회기반시설로만 놓고 볼 때 미국은 세계 10위권 밖이다. 미 연방도로관리청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60만개 이상 교량의 25%가 ‘노후’ 등급이다. 2050년까지 미국 전역의 주요 기반시설을 안전등급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2250억달러이며, 이는 현재보다 60% 이상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비용을 조달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슈피겔은 “미국인들은 너나 할것 없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희생을 말하지만, 정작 세금을 내고 사회적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등 연대가 필요할 때면 공동체의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고 꼬집었다. 워싱턴과 다른 지역들,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 도시와 농촌, 그리고 각 주끼리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마치 내전상태를 방불케 하며, 극심한 개인주의와 지역이기주의는 감세 요구와 ‘큰 정부’에 대한 배척으로 나타나 국가 재정조차 충당하기 버겁게 만든다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점점 잃고 있다. 미국의 양당제 정치는 미국을 완전히 반으로 나눠 놓았고 큰 정부인가 아니면 작은 정부인가, 증세인가 감세인가 하는 국가적 이슈에 대해 상반된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극한적 대립은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유명무실화로 이어진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민주·공화 양당의 대립은 지난 수십년 간 전례가 없을 수준이었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많은 법안들이 공화당의 방해로 의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5년간 의회에서 공화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행위)’에 나선 횟수는 385차례로,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임기가 끝난 1989년까지 70년 동안과 맞먹을 정도다.


극단적인 사례는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연합체 ‘티파티’다. 다윈의 진화론을 악마의 이론이라고 부정하고 양성애자들은 모두 절멸시켜야 하며 여성들은 절대적으로 남성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낙태를 찬성하는 의사들의 사무실을 불태울 정도의 폭력성까지 보여줬다. 가히 ‘미국판 탈레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들은 미국의 뿌리가 기독교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믿는 것은 모든 세금이 철폐되고 중앙정부조차 사라진 극단의 세계다.


정치의 양극화는 사회적 부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아직까지는 미국의 대부분 대학들이 세계 최고 교육기관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천문학적인 수준의 학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정부의 교육예산까지 줄어들면서 대학 등록금은 해마다 뛴다. 미국 대학 졸업생들이 진 학자금대출은 1조달러에 이르며, 이는 미국 전체 신용카드 부채를 넘어서는 규모다. 부자는 더 좋은 교육을 받아 더욱 높은 사회적 지위를 굳히고 가난한 자는 교육 기회조차 얻지 못해 사회구조의 외곽으로 점점 밀려난다.


한때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동경하는 ‘기회의 땅’이었던 미국은 이제 과거의 모습이 됐다. 한때 이민자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고, 1995~2005년 사이 미 정보기술(IT)산업의 심장인 실리콘밸리에 세워지는 기업의 절반 이상이 이들 해외 이민자들의 손에 의해 세워졌다. 그러나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고학력 인도·중국 이민자들이 다시 자신들의 나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인도·중국에 더 많은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성장시킬 우수한 인력들이 빠져나가면서 미국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약화되고 인도·중국의 힘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 격차를 메울 뛰어난 미국인 인력들은 IT·공학 분야 진출을 회피하고 훨씬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월스트리트로 몰려가고 있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미국이 세계 최고 국가가 아니라는 것도 절감하고 있다. 세계를 무릎꿇게 하지도, 반대로 외면하지도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가 리비아·시리아·이란 문제에 대해 유약하게 접근한다며 몰아붙였다.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원했지만,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전쟁 후 이라크는 아랍세계의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맹아가 되기는 커녕 여전히 불안한 내치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뼈아픈 실패만을 남긴 채 2000이 넘는 사망자와 수만명의 전상자를 기록했다. 2009년부터 아랍국가들을 휩쓴 민주화 시위 역시 미국의 힘이 더 이상 미치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미국의 국력이 쇠퇴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21세기를 미국의 시대로 다시 선언한다”고 호언장담한 것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력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편집장을 지낸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타임’지 기고를 통해 “미국 이후의 시대, ‘포스트 아메리카’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내세웠지만 이제 그 시대는 끝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그 반례다.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정부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중국인의 80%가 현 국가체제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반면 미국의 국가체제를 만족한다는 답변은 30%일 뿐이다. 이제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이 아닌 중국을 자신들의 롤 모델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대선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으로 끝났지만 또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재정절벽’ 문제다. 백악관과 의회가 정부 재정지출 삭감에 합의하지 못하면, 내년부터 부시 행정부시절 발효된 세금인하 조치가 종료되고 지출삭감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10년에 걸쳐 1조2000억 달러의 정부지출이 자동으로 삭감된다. 그러나 민주·공화 양측은 감세문제에 대해 전혀 타협하지 않은 채 지난해 벼랑 끝 대치를 재연하려 하고 있다. 합의하지 못하면 전방위적 예산삭감으로 미국의 전 국가시스템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며, 미국 경제는 순식간에 경기침체 국면에 빠지게 된다. 물론 극적인 타협으로 이번에도 문제를 봉합한 채 미뤄둘 수도 있다.


슈피겔은 “숱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지만 재정절벽 논란의 본질은 미국이 ‘미국 이후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단순한 질문에 불과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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