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스런 얼굴, 아무렇게나 소를 탔다
안개비에 반쯤 젖어 밭둑 지나간다
물가에 오니 집에 다 온 걸 알겠구나
저 지는 해도 따라왔네 개울물과 함께
太平容貌恣騎牛 半濕殘 過壟頭 知有水邊家近在 從他落日傍溪流
곽여(郭輿)의 '소 타는 시골노인
■ 고려 사람 곽여(1058-1130)는 활쏘기(射), 말타기(御), 거문고타기(琴), 바둑두기(碁) 따위의 4대 잡기에 능한 천하한량이었다. 그가 읊는 이 편한 세상을 한번 보라. 굳이 남을 위해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으니, 눈코입귀가 자연산 그대로 붙어 흐뭇해하고 있다. 소를 탄 이유도 용무가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니 다잡아 앉을 이유가 없다. 대충 걸터앉아 반쯤 졸면서 간다. 비가 오거나 해가 나거나 그런 것도 개의할 바가 아니다. 걷히는 안개 속에서 옷은 반쯤 젖었다. 산을 내려오면 개울물이 넓어지게 마련이다. 음, 다 왔군. 느릿느릿 소를 따라 해도 등 뒤에 왔다. 물에 비친 해도 함께 따라왔다는 저 표현이야 말로 멋드러진 합류(合流)이다. 당신은 이보다 잘 사는가. 이 저녁답 당신 햇살은 얼마나 남았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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