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락에 달빛 가득하니 촛불 켤 일 없소/산이 환하게 들어와 앉으니 손님 필요 없소/또 소나무 거문고 있어 악보에 없는 곡을 연주하오/보배롭고 중한 것을 가졌지만 뭇사람에게 전하진 못하오/滿庭月色無煙燭 入坐山光不速賓 更有松弦彈譜外 只堪珍重未傳人
■최충은 고려 초기 정치인으로 '바다 동쪽의 공자'로 추앙받은 교육자이다. 숨어사는 일이 현실적으로 궁상을 피하기 어렵지만, 옛사람들은 꾸준히 그 무욕과 한거(閑居)를 예찬하고 그리워해왔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최충조차도 웰빙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파하고 있었다. 촛불과 손님과 거문고. 이것만 해도 세상에선 높이 치는 삼락(三樂)이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예술을 즐기는 일. 그런데 최충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완전 자연산으로 바꿔놨다. 조명은 달빛으로 손님은 산봉우리들로 그리고 악기는 솔바람소리로. 저것은 배터리도 없이 무한 사용 가능한지라, 고장날 염려도 AS도 필요없다. 이거 정말 괜찮은데. 인간에게 정말 좋은데. 뭐라 표현할 길이 없네. 고려 최고의 선생님이었던 최충이 '산수유 사장님'처럼 쩔쩔 매며 이 좋은 것을 전달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