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이웃 늙은이들은/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 나의 싸리말 동무가 셋째 아들이었는데 식솔이 일곱인 걸 보면, 그 뒤에도 아이가 몇 더 있었을 것이다. 주렁주렁 어린 아이를 이끌고 눈보라치는 산을 향해 떠나는 털보네의 꺼뭇꺼뭇한 뒷그림자가 눈빛에 드러났다 달빛에 드러났다 한다. 이튿날 모두 놀라서 그 가족의 발자국을 보는데, 마을 늙은이들은 빚도 갚지 않고 튀어버린 털보에 대해 악담 비슷한 짐작들을 해댄다. 옛날 여진족이 득실대던 그 고개로 갔을 거라고도 하고, 러시아로 갔을 거라고도 한다. 그런 곳에 가서 과연 살 수나 있을 것인가. 아이인 나의 귀에는, 동무가 이제 사지(死地)로 가서 죽게 되었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무서운 곳을 짚었다'는 저 표현은, 나의 동무와 함께 어린 시절 들었던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들의 변주이다. 전설들은 이야기 안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고, 현실이 곧 무서운 전설이 되는 것을, 이용악은 깨달았을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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