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그날 밤/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 이야기를 꾸려가는 이용악의 솜씨는 참 멋지다. 아이를 낳고난 뒤에 동네 아낙들이 빨래를 하며 수군거린다. 가을이라 날도 슬슬 추워오는데 다시 아들을 하나 더 낳았다니 참 걱정이로군. 아낙들이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털보네의 가계가 한심해진 상황을 짐작케 한다. 장사 일도 손을 놓아 놀고있는 소들이 새끼를 낳았더라면 팔아서 돈이라도 되지, 이 어려운 시절 자식은 뭐하러 낳았나 하는 핀잔이다. 아낙들이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한 것은, 털보네를 비웃으려 한 게 아니라, 털보의 처지가 곧 스스로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저릎등(겨릎등)은 삼줄기에 불을 피운 등을 말한다. 기름처럼 잘 타지는 않는 등인지라 불빛이 꺼묵꺼묵했으리라. 그것을 시름시름 타들어간다고 표현했다. 털보네의 상황을 생각하면 적실한 첩어이다. 아이를 낳고난 뒤 털보는 술을 마셨고 또 어디선가 한참 울었나 보다. 안그래도 요즘 잠을 못자서 충혈된 눈이 더 뻘개졌다. 심란스럽게도 짓두광주리 옆에선 새끼가 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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