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글로벌 TV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유럽시장을 겨냥, TV신제품을 내놓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준비했다. 유럽의 축구축제인 유로2012와 런던올림픽 특수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실물경기가 위축되면서 이런 기대가 걱정으로 바뀌었다. 유럽 각국의 경제상황 악화로 현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이같은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걱정은 TV 판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휴대폰, 자동차, 조선 등 유럽재정위기의 사정권에 들어있는 국내 주요 기업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미 조선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 유럽 재정위기 심화로 유럽 선주사들이 신조 중단은 물론 기존에 발주한 배의 인도를 늦추거나 아예 발주를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우리나라의 대유럽연합(EU) 선박 수출은 3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8%나 크게 줄었다.
유럽 위기가 조선업종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시작하면서 철강업종도 긴장모드에 돌입했다. 주요 고객사인 조선사들의 선박 건조 물량이 줄면서 후판 판매에 타격을 받고 있다.
걱정이 확산되면서 주요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총수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주요 그룹 오너들이 최일선에서 직접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글로벌 시장 침체로 수출이 타격을 입고 내수 시장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은 유럽위기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스페인 은행부실 확대, 이탈리아 구제금융 신청 등으로 확산될 경우 하반기 국내 경제 성장률이 2.0%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유럽 시장을 직접 돌아보니 '(유럽시장 상황이)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여느때보다도 긴장감을 갖고 대응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임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유럽에서 돌아온 뒤 출근시간을 1시간 앞당겼다. 이 회장이 사무실에 일찍 나오면 경영진은 물론 일반 사원 사이에도 긴장감이 돈다. 특히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미래전략실장 전격 교체를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이달 한 달간 진행되는 전략회의에서 계열사 사장들과 위기 대응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며 고삐를 죌 것을 주문했다. 구 회장은 이번 회의에 집중하기 위해 6월 한 달간 잡혀졌던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그는 계열사별 전략회의에서 제2창업 전략을 내놓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올 상반기 유럽시장에서 승승장구했던 현대ㆍ기아차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들어 보기 드문 장시간 회의를 진행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25일 열린 현대ㆍ기아차 해외법인장 회의는 오전8시 시작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마무리됐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유럽 위기 확산을 막아라"라는 당부와 함께 "직접 유럽 현장을 방문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각 지역별 현황을 꼼꼼히 살핀 것은 물론이고 당부사항도 평소와 달리 많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상반기 유럽 시장에서 보여줬던 성장세를 하반기에도 이어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ㆍ기아차는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유럽에서 강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올들어 지난 5월까지 현대차의 유럽연합 27개국 자동차 판매실적은 각각 17만9936대로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했다. 기아차는 13만6573대를 팔아 24.7%나 증가했다. 5월 기준 누적시장점유율은 두 회사를 모두 합쳐 5.8%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포인트 높아졌다. 이 기간 1~5월 유럽 전체 자동차 판매는 작년 동기보다 7.3% 감소했다.
SKㆍGS그룹에서도 연일 오너의 주문이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업은 위기를 먹고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 활용해야 한다"며 선제적 대응을 강력 주문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최근 경영진 회의에서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찬찬히 돌아 보고 보완점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