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귀국한 뒤 주력제품 일류화 주문, 정면 돌파 전망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어려운 몇몇 나라를 다녀왔다. 유럽 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나빴다."
지난 5월 2일 출국해 20여일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현지를 돌아보고 일본에서 여정을 마무리 지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4일 귀국 당시에 한 '유럽 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나빴다'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회장은 연초부터 유럽의 경기 침체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출장길에 나섰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생각보다 나빴다"는 짧은 말 한마디로 유럽의 경기 침체 상황에 대해 피력했다.
정부와 국내 기업 일부는 그리스 사태가 잘 해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던 때였다. 이 회장만이 유럽시장을 정확히 본 것이다. 귀국 한달 무렵 유럽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일보에 접어들면서 이 회장의 혜안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재계는 유럽경기 진단에 이어진 "수출에는 조금 영향이 있겠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인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이 회장의 공항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라는 표현이 삼성을 의미하는 지,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지는 명확치 않지만 재계는 삼성이 곧 우리나라 경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애둘러 해석하고 있다.
재계는 이 회장이 20여일간 유럽에 머무르며 위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비책을 마련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회장은 귀국 직후인 29일 오전 6시 40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했다. 이날 이 회장은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신종균 무선사업부 사장 등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애플 협상 경과를 보고 받고 스마트폰과 함께 카메라 사업의 일류화를 주문한데 이어 유럽시장에 대한 소회를 전달하고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후 유럽 경기 침체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이건희식 특유의 경영을 통해 쉬어가는 대신 오히려 공세로 나설 전망이다. 유럽은 물론 중국 시장까지 위축되는 상황에서 TV,스마트폰 등 주력분야에 대한 공격경영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의 생각보다 나쁘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의 배경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약 90%로, 이중 유럽은 20%, 중국도 20% 정도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유럽위기에 대비해 경영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은 만큼 큰 틀의 경영계획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돌발상황에 대비해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유럽 경제 위기에 대한 대책은 지난해 말 경영계획을 수립하면서 이미 반영된 부분"이라며 "지금 상황이 좀 더 나빠지긴 한 것 같지만 비상 대책을 별도로 수립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유럽에선 오는 6월부터 월드컵에 비견될 정도로 급성장한 축구리그 '유로 2012'가 시작되고 7월에는 영국 런던 올림픽이 열린다.
스포츠 빅 이벤트가 있는 해는 TV 판매량이 급증하지만 올해는 오히려 수요가 줄고 있다. 경기침체 탓이다. 지난 1분기 유럽내 TV 수요는 16% 줄었고 2분기에는 2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TV인 'OLED TV'를 개발해 놓고도 출시시기를 고민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까닭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유럽TV시장에서 차세대 TV인 OLED를 선점할 계획이었지만 유로존 위기로 출시 시기를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유럽 위기 돌파의 실마리는 이달 말 열리는 삼성전자 글로벌 경영전략회의에서 가시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가진다. 전 세계 법인장과 사업부장들이 모두 참석해 '유럽 위기 대응'과 관련해 논의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유럽 경기 침체로 인해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의 고민이 가장 클 것"이라며 "유럽 위기 상황을 정확히 짚어낸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가 어떤 해답을 내 놓을지 재계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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