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주=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 수가 지난해에 453만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91만7000명 늘어난 수치다. 전체 취업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에 육박했다. 단시간 근로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30대 이상 맞벌이 여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밤샘 근무 등 열악한 장시간 근로 환경도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장시간 근로의 불편한 진실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1. 광주광역시 소재 K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김영남(46ㆍ가명)씨는 남들이 출근하는 오전 8시에 집으로 퇴근한다. 먹는 둥 마는 둥 간단히 요기를 하고 서둘러 잠을 청한다. 커튼을 겹겹으로 치고 침대에 눕지만 때를 놓친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남편이 뒤척이는 모습에 아내는 서둘러 두 애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간다. 김씨는 밤낮이 뒤바뀐 라이프 사이클 탓에 피곤을 달고 산다. 야간조 근무를 하러 밤 8시께 집을 나설 때는 건강 보조 식품을 챙기는 게 습관이 됐다.
#2. 울산광역시 H자동차의 협력사에 근무하는 최인중(50)씨는 오후 3시30분에 퇴근하면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모기업인 H사가 주야간 2교대에서 주간 2교대로 근무 체계를 바꾸면 협력사도 별 수 없이 따라야 하기 때문. 20여년 이상 지속해 온 삶의 패턴이 하루아침에 바뀔 처지다. 최씨는 그러나 휴일 특근마저 폐지될까 전전긍긍이다. 평일보다 시급이 센 휴일 근무가 없어지면 수입도 줄기 때문이다. 임금을 덜 받더라도 주말에는 잔업을 하고 싶다는 게 동료들의 생각이다.
최근 노동계 최대 이슈로 꼽히는 '장시간 근로'를 둘러싼 정반대의 현실이다. 기자가 찾아 간 현장의 목소리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은 가히 살인적이다. 연간 2116시간(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49시간)에 비해 무려 360시간이 많다.
정부는 노동 시간을 줄여 선진국 수준으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장시간 근로 문제는 발상만 전환한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콜롬버스의 달걀'"이라고까지 말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정부의 취지에 노동계와 경영계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노사의 입장은 '팽팽한 평행선'이다. 특히 근로 시간이 단축되는 데 따른 '임금과 생산성 보전' 문제에 대해선 노사의 입장 차이는 크다. 경주시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사 사장은 "장시간 근로 시간을 단축해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임금과 생산성 보전 외에도 사회적 인프라를 고려해 시간을 두고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자는 일하는 시간이 줄더라도 임금은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회사는 기존의 생산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단 입장이다.
현장 근로자들은 밤샘 근무의 피로를 호소했다. H사 현장 근로자는 "솔직히 야간 근무로 인해 만성피로, 호흡기 질환,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동료들이 많다"며 "회사 내부에서는 주야간 2교대를 없애고 주간 연속 2교대 도입에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밤샘 근무를 없애는 데도 걸림돌은 임금과 생산성이다. K사 관계자는 "밤을 새면서 일을 하는 관행을 없애는 것에 찬성하지만 기존 대비 차를 덜 만들게 된다면 임금 역시 줄어야 맞다"며 "회사입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라인 증설과 같은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완성차 회사에서 시행 중인 주야간 2교대를 주간 연속 2교대 혹은 3조 2교대 등으로 교대제를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 문제에서 휴일 특근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휴일 근로가 연장 근로 한도(주 12시간)에 포함되면 주당 근로 시간은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23.5% 감소한다. 이럴 경우 노동계는 근로 시간이 줄어든 만큼의 임금 보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은 당장 생산성 감소에 따른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입법을 추진 중인 정부의 방침에 "전혀 현실을 파악하지 못 한 것"이라며 노사가 함께 반발하는 이유다. H사 노조원은 "주말에 집에서 놀면 뭐합니까. 눈치만 보이죠. 집에서도 솔직히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 오길 바랍니다. 현실이 그래요"라고 씁쓸히 웃었다.
울산·광주=김혜원 기자 kimhy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