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자격> 8회 JTBC 수-목 밤 8시45분
<아내의 자격>은 마치 서래(김희애)가 꾸는 한편의 긴 악몽과도 같은 드라마다. 한강을 건너 기존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주한 뒤부터 서래는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중년의 앨리스처럼 계속해서 혼돈을 겪는다. 그리고 8회는 그 혼란의 절정에 다다른 서래의 악몽에 고스란히 바쳐졌다. 시누이에게 머리채 잡히는 것으로 시작해서 시어머니에게는 뺨을 맞고 지선(이태란)에게는 무릎을 꿇었으며 상진(장현성)에게는 집 밖으로 내쫓긴다. 그 사이 사이 세속의 “추잡한 언사들”도 인정사정없이 그녀를 난도질하며 끼어든다. 헝클어진 머리와 넋 나간 눈빛으로 밤거리를 헤매다 끝내 실신과도 같은 잠에 빠져든 서래의 모습에 이어 상진이 경찰을 데리고 다가오는 마지막 신은 그 자체로 악몽처럼 묘사되었다.
하지만 서래의 수난과 슬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이처럼 외부로 드러나는 극적인 사건과 폭력보다 그녀의 평소 일상을 알게 해주는 놀랍도록 디테일한 묘사들이다. 가령 태오(이성재)의 전화번호를 삭제할 때 화면에 비춰진 서래의 핸드폰 주소록 속 단출한 연락처들은 며느리와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의 한정된 세계를 요약하고 있으며, 화장실에 숨어 주저앉은 서래 옆에서 태연하게 소변을 보는 상진의 행위는 그녀의 아내 자리 역시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음을 단적으로 전달한다. 요컨대 서래의 비극은 오래전부터 위태롭게 잠재되어 있던 중년 여성의 억압적 일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살벌한 모성의 정글 대치동으로의 이주와 태오와의 사랑은 그 파국의 드라마에 “큐를 준 것” 뿐이다. 학벌계급사회의 살풍경을 리얼하게 재현하며 시작한 <아내의 자격>은 갈수록 그 현실의 또 다른 피해자일 중년 기혼 여성의 억압된 내면에 깊숙이 천착하며, 인간 심리에 대한 성찰과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모두를 날카롭게 극화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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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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