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장고 끝에 악수'란 말이 있다. 너무 오랜 시간 고민한 나머지 결국은 최악의 결정을 한다는 의미일 터인데, 그렇다면 이의 반대말은 뭘까. 찰나의 묘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진 않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전격적으로 꺼내든 '최강희 카드'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듯 하다. 즉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결정한 기막힌 묘수라는 얘기다.
대한축구협회는 21일 오전 11시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조광래 감독 해임 이후 공석 중인 새 대표팀 감독을 뽑을 예정이다. 올시즌 K리그 통합 우승을 일군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사실상 차기 감독으로 낙점하고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축구협회는 그동안 대표팀 사령탑 제의를 고사했던 최강희 감독을 꾸준히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최강희 감독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이라는 대명제와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를 바로 잡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고심 끝에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광래 감독 경질로 축구계 안팎의 비난 포화를 받은 축구협회로서는 최강희 감독 내정으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게 됐다.
우선 명분이 확실하다. 최강희 감독은 무엇보다 ▲K리그에서 최근 3년간 2차례 우승을 일구며 지도자로서 최고의 기량을 꽃피우고 있고 ▲내년 2월29일 쿠웨이트와 2014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최종전까지 빠듯한시일 내에 ▲국내·외국인 감독을 통틀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선수들을 파악하고 어수선한 대표팀을 수습할 수 있는 인물이다.
K리그에서 검증된 실력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1995년 수원 삼성의 트레이너와 코치를 맡아 지도자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최 감독은 2002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04년까지 축구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2005년 7월 전북의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이듬해 팀을 200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끌면서 파란을 일으켰고 마침 2009년 K리그에서 전북에 창단 이후 첫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지난해 정규리그 3위로 아쉽게 2년 연속 우승을 놓쳤지만 올시즌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신바람나는 경기를 펼치며 2년 만에 패권을 탈환했다.
선수들의 심리를 꿰뚫고 적절한 동기 부여를 한 뒤 거기에서 최대치의 기량을 뽑아내는 탁월한 능력도 장점이다. 때문에 조광래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로 충격에 휩싸인 대표팀 선수들을 빠른 시일 내에 하나로 묶고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축구협회로서는 또다른 실리도 챙길 수 있다. 바로 최강희 감독이 조중연 축구협회장과 각별한 사제지간인 데다 프로 생활 대부분을 현대에서 보낸 '현대맨'이면서도 '코드 인사'의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최강희 감독은 1984년 현대(현 울산) 축구단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한 뒤 1992년말 은퇴할 때까지 현대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엔 조중연 회장과 감독-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다. 또 2005년부터 지금까지 전북 현대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하지만 늘 축구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여권 인사로 분류되지 않았다. 어찌보면 야당적 성격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때문에 조광래 감독의 '수상한' 경질로 비난을 받아온 축구협회는 '최강희 카드' 선택으로 축구계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축구팬들 역시 검증된 기량과 함께 선수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최강희 감독의 선택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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