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17 MK에 바란다. (상)시민단체·노조
글로비스에 일감 몰아주기 현대차의 아킬레스건 지적
녹십자생명 인수도 상속 수단 의혹 씻어내야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아시아경제신문이 진행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MK 리더십' 시리즈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실시한 정 회장의 리더십과 관련한 다양한 분석이다보니 사회의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경제는 'MK리더십' 시리즈를 통해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 뿐만 아니라 측근 인터뷰, 가풍 등을 통해 '인간 정몽구'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번에는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에 바라는 점을 2회에 걸쳐 싣고자 한다. 대상은 시민단체와 현대ㆍ기아차 노조, 경영학계, 협력사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현대차그룹이 영속성을 갖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칭찬과 더불어 냉정하고 객관적인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번 회에서는 시민단체와 노조가 바라는 쓴소리를 실었다. 다만 현대ㆍ기아차 노조의 경우 최근 지도부 선거가 맞물려 내부적인 입장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 어떻게 평가해야 하지?"= 국내 대표 진보성향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8월 29일 정 회장이 사재 500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진보 시민단체는 대기업 오너, 즉 재벌에 대해서는 쓴소리만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날 만큼은 아픈 말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와 같은 계열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채이배 회계사는 "우리가 기업 논평을 할 때 칭찬은 잘 안한다"면서 이날 정 회장 관련 논평이 이례적이었음을 내비쳤다.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의 개인재산 출연 발표 직후 내놓은 논평에서 "새로운 기부문화 형성에 긍정적 계기가 되리라 판단하고 이를 환영한다"고 이례적인 칭찬을 했다. "무엇보다 정 회장의 기부는 자금 출처가 회사의 돈이 아닌 순수한 개인 재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한발 더 나아가 "특히 논란이 됐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부함으로써 더욱 의미가 있다. 정 회장의 이번 기부가 강제성이 없는 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라고 판단하고, 재벌들에게도 새로운 기부문화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끝맺었다.
시민단체에 종사하는 한 운동가는 정 회장의 사재 5000억원 기부에 대해 '통큰 결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과거 정 회장 자신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을 어느 정도 이행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해비치사회공헌재단에 기부한 것에 대해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해비치재단이 현대차그룹 산하 재단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데다 정 회장이 기부한 주식을 전액 현금으로 바꿔 자금으로 활용한다고 밝힌 만큼 현실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시민단체가 이처럼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을 칭찬한 것은 과거에 비해 사회에 보다 책임적인 의식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것을 우선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했지만 그 정도가 다소 줄었다는 것이다.
현대차 주주 15명이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의 일이다. 이들은 정 회장 등을 상대로 현대글로비스 부당지원을 문제 삼았는데, 올해 2월25일 서울중앙법원이 주주들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달인 3월에 현대차그룹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826억여 원 배상 판결을 받은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처분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판결 결과에 대해 항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역시 시민단체를 포함한 주주입장에서는 놀랄만한 반응이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2심, 3심까지 가는 게 일반적인데, 현대차그룹은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주대표 소송 이후 합의 과정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소위 '재벌'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채 회계사는 "과거 삼성과 법적 소송을 벌인 적이 있는데, 대화가 안됐다"면서 "반면 현대차는 다른 그룹에 비해 개방적이다. 의사소통이 되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 존경받는 기업돼야" 당부= 소위 '존경받는 기업'이 요즘 대세다. 기업의 본질이 이익 창출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등 주변을 돌아보는 노력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으며 그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고 경영자에 대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와 같은 높은 도덕성을 바란다.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과 CEO가 됐지만 시민단체들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주체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경영과 관련해서는 정 회장 뿐 아니라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사회단체들은 현대차가 '존경받는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법 테두리에서 애매하게 오가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행위와 같은 논란거리가 없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글로비스를 둘러싼 일감 몰아주기다. 핵심은 상속이다. 물류기업인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와 기아차 수출 등을 맡으면서 급성장을 했고 이는 오너에게 상당한 이익을 안겨줬다. 경영권 승계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 입장에서는 아픈 부분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영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아킬레스건은 일감 몰아주기다. 부(富)의 상속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크다"며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게 시장경제를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를 볼 때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등이 출자한 회사다. 현대글로비스의 이익을 이들 회사가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언급했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녹십자생명 인수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는 할 말이 많다. 현대차그룹은 녹십자생명이 자동차보험 등 할부 금융에서 주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시민단체들은 이 역시 상속의 수단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퇴직연금을 몰아줘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다.
채 회계사는 "우리의 바람은 정 회장이 상속을 하더라도 깔끔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현재로서는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타협점을 찾으려면 더 이상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 하는 모습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이 같이 지적하기가 쉽지는 않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데다 최근 실적 호조로 주가가 상승하면서 주주들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 모습이다. 시민단체도 "되돌려 놔야 하는데 너무 커져버린 감이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현대ㆍ기아차 정규직 노조도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가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착수했을 때 노조는 반대했다. 자칫 건설 인수로 자동차전문그룹이라는 기조에 변화가 나타날까 하는 점 때문이었다.
이 같은 공식입장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의 건설 인수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전 세계 시장에서 질주하면서 자금 여력이 풍부해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당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노조)가 반대한다고 사측이 인수를 안하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형식적으로 반대했던 셈이다. 노조의 반대는 현대차그룹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경받는 기업이 갖춰야 할 진정성이 부족했다.
노조는 정 회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 모두 새 지도부 선출을 진행중이어서 단체를 대표해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측면도 있지만 자사 오너를 언급하기가 조심스런 부분도 없지 않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사측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립각을 세우지만 회장님을 언급하기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MK리더십 특별 취재팀(이정일ㆍ채명석ㆍ최일권ㆍ김혜원ㆍ조슬기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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