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16: MK가 만든 재계 투톱시대
1세대 '정주영 vs 이병철' 이어 재계 대표 라이벌구도 부활
1999년 현대그룹 해체후 10여년만에 '삼성급' 그룹 키워
현대家 아산나눔재단 1조 기부 능력있고 존경받는 기업가로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현대자동차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나요?"
재계 고위 임원들 가운데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 뿐만 아니다. 자동차부품 업체는 물론, 철강ㆍ화학 업계 심지어 정보기술(IT) 업체들까지 현대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관심을 갖게 하는 '키워드'로 자리 매김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 못지 않게 지금 기업들은 정 회장의 한 마디에, 그가 향하는 시선을 좇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큰 변화다.
◆"산업을 움직인다"= 지난 10년간 국내 산업중 가장 빠르게 치고 올라온 분야중 하나가 자동차다. IT산업의 3대 포트폴리오인 반도체, 액정화면(LCD), 휴대전화의 약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지긴 했으나 이들 못지않게 산업보다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한 산업은 자동차였다. 국내 자동차 산업 중심에 현대차가 있다.
정 회장은 10년전 약속한 데로 현대차를 글로벌 톱5에 등극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현대차는 거침이 없었고, 내년 이후 다시 불거지고 있는 암울한 경제 위기 전망에도,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기업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이러다보니, 최근 기업들은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자동차 사업에 많은 기업들이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사업 기반을 단기간에 잡으려면 어떻게든 현대차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 현대차의 시도가 곧 업계의 흐름이 됐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연결을 원하는 기업 덕분에 현대차 출신 인사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헤드헌팅 시장에서 현대차 영업부와 연구직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이름이 뜨는 즉시 접촉을 시도하며, 이들은 입사와 동시에 고위직 또는 CEO에 선임된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재계는 삼성의 DNA를 접목시키겠다며 앞 다퉈 삼성 출신 인재들을 영입했다. 타 기업으로 진출한 이들은 재계 전반에 삼성의 기업문화를 퍼뜨렸고, 덕분에 삼성의 재계 장악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오로지 삼성'이라는 공식이 희석되고 있다. 정 회장과 현대차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투톱 시대'의 부활= 1999년 현대그룹이 소그룹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 '정주영'과 '이병철'로 대표되는 창업 1세대간 재계 라이벌전은 마침표를 찍었다.
이어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별세, 현대가 구성원들간 갈등의 지속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국민기업' 현대(現代)의 이미지는 한 단계씩 떨어져 나갔다. 정부와 재계 총수들과의 회합 등에서도 현대가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언론 보도에서 비중도 그만큼 낮아졌다. 삼성그룹의 성장세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현대가중 누구 하나 이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범 현대가의 맏형인 정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0년 현대차그룹 출범 직후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임직원들에게 정 회장은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 한토막을 인용해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했을 때 로마의 젊은 스키피오 장군은 적이 진군하면 나도 진공한다는 '적진아진' 전략으로 적진인 카르타고 본토로 진군해 한니발을 물리쳤다"며 "르노ㆍ포드 등 해외차 업계의 국내 진출에 맞서 우리도 그들의 본고장으로 진출, 신차와 미니밴 등 주력차종을 앞세워 정면 승부하자"고 말했다.
현대정공 시절부터 정 회장이 직원들에게 주문한 것은 조직원들간의 강력한 단합이었다. "모든 사원이 화합 속에 열과 성을 다해 난관을 돌파해 나가는 추진력을 땀의 현장에서 배운 것들이 현대차인들의 긍지로 승화됐다"며 "기업의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일수록 이같은 사원의 단합이 더욱 요청된다"고 말했다.
품질경영ㆍ기술경영ㆍ현장경영과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서서히 힘을 내세웠고 10년이 지난 현재 정 회장은 이 회장과 더불어 재계의 아이콘으로 올라섰다. 다시 말해 재계에 10년 만에 '정몽구' 대 '이건희'라는 라이벌 체제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현대'의 부활= 최근 만난 현대차그룹 계열사 고위 임원은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승기를 잡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제 우리가 하려는 생각, 우리가 하는 일이 재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며 "현대차는 과거 현대그룹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룹의 외형도 범 현대가는 범 삼성가와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2010년 기준, 금융회사를 제외한 범 현대가(현대차그룹ㆍ현대중공업그룹ㆍ현대그룹ㆍKCC그룹ㆍ현대산업개발그룹ㆍ현대백화점그룹)의 자산은 212조6927억원, 범 삼성가(삼성그룹ㆍ신세계그룹ㆍCJ그룹)는 235조2755억원이었다. 매출액은 194조6746억원, 233조1882억원이었다. 적어도 오너 일가간 경쟁에서 삼성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현대차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온다.
최근 들어 범 현대가들이 정 회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 봐야 한다.
지난해 4월 8일 열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종합준공식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을 비롯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등 범 현대가 오너 일가가 총출동했다. 범 현대가 오너 일가가 당진에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을 이뤄낸 정 회장이 현대가 장남으로서 형제ㆍ친척들에게 공식 인정받은 게 이날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 현대건설을 인수한 정 회장은 지난 3월 14일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 명예회장 10주기 추모 음악회도 범 현대가를 대표하는 얼굴마담 역할을 자처했다. 이날 음악회에는 오너 일가와 전ㆍ현직 임직원, 정관계 인사 등 3000여명이 참석해 '현대'의 힘을 과시했다.
정 회장은 9월에는 5000억원의 사재 출연을 발표하며 정부의 공생발전 화두에 적극 부응했다. 한 달여 전 정몽준 의원 등 범 현대가 일가들이 사재 등 5000억원을 출연해 '아산나눔재단' 설립을 발표한 것까지 포함해 한 달 사이에 현대가는 무려 1조원이라는 거액을 사회공헌활동을 위해 내놓았다. 삼성그룹보다 빨랐을 뿐만 아니라 금액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컸다.
재계 관계자는 "이제 정 회장은 '능력있는 기업인'에서 '존경받는 기업가'라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정 회장의 '현대', 정 회장이 꿈꾸는 '산업'이 어떻게 전개될 지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MK리더십 특별 취재팀(이정일·채명석·최일권·김혜원·조슬기나 기자) MK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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