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뷰앤비전]'살색' 크레파스는 없습니다

시계아이콘01분 37초 소요

[뷰앤비전]'살색' 크레파스는 없습니다 우기종 통계청장
AD

[아시아경제 우기종 통계청장]지난달 우즈베키스탄 출신 귀화 여성이 찜질방 입장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외국인이라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지 모르고 피부색이 달라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게 업주가 내세운 이유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남편과 결혼해 국적을 취득했다고 주민등록증까지 보여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여성은 아이가 이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만약 아이가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또 그 기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를 생각하면 제3자 입장에서도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지금은 '살구색'으로 바꿔 쓰고 있는 '살색' 크레파스의 유령이 다시 부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26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2%를 넘는다.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1757만가구 가운데 38만가구가 다문화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사회가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의 가장 큰 동인 중 하나가 국제결혼이다. '2010년 혼인ㆍ이혼 통계'에 의하면 전체 결혼 중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1.2%에서 2005년 13.5%를 정점으로 2004년 이후부터는 매년 10% 이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결혼한 32만6000쌍 중 3만4000쌍이 국제결혼을 했다. 이 중 76.7%가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이다. 외국 신부의 73.2%는 중국과 베트남 국적이다.


개발도상국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결혼중개업체에 의해 초스피드로 이뤄지고 있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한 상황이다. 쇼핑하듯 신부를 고르게 하는 결혼중개업체의 맞선방식이 캄보디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혼율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총 이혼 건수 11만6858건 중 국제결혼 가정의 이혼이 1245여건으로 9.6%를 차지했다. 10건에 1건꼴이다. 2001년의 이혼 건수 13만4608건 중 외국인과의 이혼이 1694건으로 1.3%였던 데 비해 10년도 지나지 않아 7배 넘게 늘어났다.

국내결혼과 국제결혼은 다르지 않다. 우리끼리의 결혼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을 '외국인'에게도 확대해서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그 '외국인'도 따지고 보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반만년 단일민족의 역사는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민족과 교류를 했고 이민족을 수용해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락국(가야) 수로왕은 약 2000년 전 현재 인도로 추측되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혼인을 했다. 이 혼인은 문헌으로 남은 우리민족 최초의 국제결혼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성씨 275개 가운데 절반인 136개가 귀화성씨라고 한다.


건강한 국제결혼 문화를 확산시키고 다문화 가정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립에 관련된 통계의 작성과 분석이 시급하다. 지난달 20일에는 통계청이 국제인구연구연맹(IUSSP)과 공동으로 '세계 각 지역의 혼인이주와 국제인구이동'을 주제로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달에는 다문화 가족의 출생, 사망, 혼인, 이혼통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매년 다문화 통계와 관련한 예산도 증액해 통계의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모든 결혼, 모든 결혼 생활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결혼을 지켜주는 가족과 사회도 사랑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2004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포스터에 있던 '사랑엔 특별한 언어가 있다'는 카피처럼 말이다. 글로벌 다문화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특별히 필요한 언어는 일상의 문자와 말이 아닌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지혜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랑의 언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기종 통계청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