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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달이 뜨면 개가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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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정치판의 애플...경쟁의 질서를 바꾼다

[데스크 칼럼]달이 뜨면 개가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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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의철 기자]예전에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직업 중에서 가장 섹시하지 못한 직업이 기자야. 왠 줄 알아? 어떤 것이든 해석하고 분석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그 선배도 기자다. 지금까지도 기자다. 나도 기자다. 그래서 나도 그 선배도 그때나 지금이나 섹시하지 못하다.


사물을 직관적으로 또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약간 삐딱하게, 비판적으로, 각을 세워서 보는 게 기자다. 그렇게 훈련받았고. 그런 시각이 없으면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물론 기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세상의 변화와 거리가 멀어지고 오히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변화치(癡)'가 된다. 실제 기자라는 직업은 변화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그 변화마저도 취재의 대상일 뿐 자기 일로 생각하지는 못한다. 몸매가 섹시함과 거리가 먼 것은 아마도 격무와 폭음 때문일 테고. 당시 선배와 나는 '섹시하다'는 의미를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최정점'이라고 정의했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이슈들을 보면 기자들이 섹시하지 못한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제 것인 양 고민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기자들에게 자기 몸매와 정신을 가꿀 시간이 있더란 말인가.

닌텐도가 30년 만에 첫 영업적자를 냈다. 3월 결산법인인 닌텐도는 지난 9월까지 6개월간 573억엔(약 83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한때 닌텐도 게임기는 전 세계 모든 어린이에게 '머스트 해브(must have)' 제품이었다. 슈퍼 마리오, 포켓몬 등의 걸출한 캐릭터들을 배출한 닌텐도다.


'공병우 타자기'를 기억하시는지. 지금의 20ㆍ30대에겐 '타자기(typewriter)' 라는 낱말 자체가 생경할지 모르지만 1970년대에 중ㆍ고교를 다닌 이들에게 공병우 타자기는 '꿈의 타자기'였다. 기능성, 디자인, 세벌식 한글꼴 등 어느 한 구석도 당시 수입산 타자기와 견줘 손색이 없었다. 타자기의 명품이었다.


닌텐도의 몰락은 닌텐도를 능가하는 게임 회사가 출현했기 때문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게임기 영역 밖의 경쟁자가 나타나서다. 마찬가지로 타자기의 퇴출은 '기능 뛰어나고, 디자인 좋고, 값마저 싼' 타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컴퓨터의 출현이 타자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냈다.


세계 휴대폰 업계의 최강자였던 노키아를 흔든 기업도 동종의 휴대폰 업체가 아닌 애플이었고, 브리태니커와 같은 인쇄된 백과사전들 간 경쟁을 종결시킨 것은 CD롬이었다. 산업환경의 변화는 이처럼 경쟁의 질서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정치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로 보인 안철수 교수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정치 영역 외의 경쟁자가 돌연 나타나서 정치권 내 경쟁의 룰을 바꿔 버렸다. 안철수는 휴대폰 시장에서의 애플이었던 셈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과 분석이다. 그걸 업으로 삼는 정치인이나 기자야 그렇다 쳐도 정치평론가, 교수, 칼럼니스트까지 입 달린 이 치고 '안철수' 얘기를 하지 않는 이 없다. 안철수의 말 한마디를 갖고 추측하거나 예단하거나 말꼬리를 잡는다.


그러나 분석가들이 정작 눈썰미 있게 봐야 할 것은 정치환경의 변화, 경쟁환경의 변화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놓고 '젊은 층의 분노' '40대의 심판' '세대 간 전쟁' 등 화려한 해석이 난무했지만 가장 평범한 이들이 가장 먼저 알았다. 이번엔 한나라당 후보가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안철수 현상'을 해석하거나 분석함으로써, 여전히 기자임을, 그래서 섹시하지 못함을 확인받고 있다. 그러나 '달이 뜨면 개가 짖는다'고, 정작 달은 가만 있는데 개만 짖는 것은 아닌지 글 쓰는 이들은 더욱 펜을 삼갈 일이다. 글을 읽는 사람들의 정신건강도 생각해서.






이의철 기자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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