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럽 구원투수 부각

-사르코지 "불꺼줘, 후진타오"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중국이 유럽 부채 문제 해결의 '구원투수'로 주목을 받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EU(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규모를 2500억유로에서 1조유로로 확대하기로 큰 틀에 합의한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주석을 가장 먼저 찾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후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EFSF 투자를 요청했다. EFSF의 클라우스 레글링 최고경영자(CEO)가 중국 관계자들과 EFSF 투자 논의를 진행하려는 목적으로 28일 저녁 베이징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투자 요청에 즉각적인 대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중국 외교부의 장위 대변인은 27일 중국이 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EU 회담과 관련해 "유럽이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현재의 위기에 대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장 대변인은 "유럽 경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중국은 유럽과 계속적인 협조를 통해 위기에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유로존 구제금융 기금인 EFSF에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3조2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25% 가량을 유로화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중국이 외환보유고에서 500억~1000억유로를 빼 내 EFSF, 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들 특수목적기구(SPV)에 투자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유럽 문제 해결에 얼마나 깊게 관여할 것인지는 유럽 각국 정상들이 중국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리다오쿠이 칭화대 교수 겸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과 위용딩 전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2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중국의 유럽 지원은 다른 국가들도 다 같이 유럽 문제 해결에 뛰어들고 중국이 투자 안전성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될 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리다오쿠이 위원은 중국 정부가 유럽 지원에 나서기 전에 유럽 정상들에게 위안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삼갈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위안화 절상 압력이 무역 파트너들간의 갈등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다오쿠이 위원은 "유럽은 중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라면서 "중국은 본질적으로 유럽 지원에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선뜻 결정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유럽 투자로 국가의 자산을 버렸다는 비판 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위용딩 위원도 "유럽에 자칫 잘못 투자 했다가는 중국 정부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민심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유럽 정상들은 유럽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실현할 정부의 의지가 있다는 것과 유럽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중국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긴축 재정안을 둘러싼 시위가 계속될 경우 중국은 유럽 정부의 능력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FT는 위안화가 유로화 대비 지난 3년간 20% 가량 절상된 것을 감안해 중국이 유럽 지원에 나설 경우 환율 변동성으로 인한 타격을 피하기 위해 위안화로 투자했다가 위안화로 상환 받겠다는 조건을 내걸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유럽 내에서는 중국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 최대 채권국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있는 중국이 유럽 문제 해결에 핵심 역할을 할 경우 유럽에서도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독일경제인협회(BDI)의 한스 피터 케이텔 회장은 "중국의 도움이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면서 "비유럽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유럽 밖 국가의 힘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짓게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