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휴양의 도시 멕시코 칸쿤에서 골프를 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랬다.
호텔촌과 호수 사이의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0여분 가량 달리니 칸쿤골프장이 나타난다. 무더운 날씨라 짧은 바지가 제격인데 혹시 골프장 드레스코드 때문에 출입을 제지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멕시코 모자에 수염을 기른 종업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반바지도 괜찮냐"고 묻자 "여기는 수영복도 좋다"고 조크를 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골퍼들로 붐볐다. 칸쿤에는 이곳과 힐튼골프장, 두 곳이 전부인데 그나마 힐튼은 보수공사 중이라고 했다. 이 골프장은 특히 내륙의 호수와 카리브해 사이에 떠 있는 T자 모양의 산호초 섬 위에 만들어져 18홀 내내 호수와 바다를 보며 라운드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다.
1976년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해변 경관을 그대로 살려 아름다우면서도 도전 의욕을 자극하는 자연친화적 골프장으로 설계했다. 18홀(파72ㆍ전장 6750야드) 규모로 골퍼 대부분이 칸쿤에 머무는 호텔 고객이라 멕시코인은 거의 없다. 가끔씩 일본인이나 한국인 몇 명이 눈에 띌 정도다.
우리 일행 3명이 각자 미화 150달러의 그린피를 내고 1번홀 티잉그라운드로 이동하니 얼굴이 까무잡잡한 캐디가 우리를 반겼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캐디가 "쟈폰니스(일본인)?"하고 물어 "노, 코리언"이라고 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발로 축구하는 시늉을 하며 연신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외쳐댄다.
1번홀에서 바다를 향해 힘찬 티샷을 날렸다. 눈과 가슴이 시원해져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 위로 긴 날개를 퍼덕이는 검은 물새들이 선회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흰갈매기떼가 무리 지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호수에서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물 위를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느라 연신 점프를 해대는데 이 움직임이 햇빛에 반사돼 온통 은빛이다.
후반 홀에 들어서니 좌측으로 넓은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바다 건너 칸쿤시 청사에는 대형 멕시코 국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해 해변을 거니는 이 자유로움, 이 넓은 녹색 정원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글ㆍ사진=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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