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금융관료에게서 속시원한 소리를 들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얘기다. 권 원장은 어제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방안'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주가치 극대화도 중요하지만 고객 보호와 소비자 보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은행들이 사회공헌 활동과 서민금융을 충분히 하고 나서 고배당을 논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리스크에 대한 충당금은 충분한지 따져봐야 한다." "(대학생을 예로 들며)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하는 건 문제가 있다." "고졸 채용에서 보듯 금융권도 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은행들의 변화가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금융회사 수수료ㆍ금리 부과체계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불합리한 부분을 손보겠다."
최근 혁신 대상으로 몰린 금감원의 수장으로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의 금감원 내 존치에 유리한 여론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히기는 한다. 그렇더라도 모두 금감원장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권 원장의 발언에 체증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론스타가 외환은행에서 고액 배당으로 투자수익을 확보하고 '먹튀'하겠다는 심산을 공공연히 드러낸 지 얼마 안 됐다. 외환은행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은행과 금융지주회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꽤 높다. 올해 우리ㆍKBㆍ신한ㆍ하나 등 4대 금융지주회사로부터 외국인이 받아 갈 배당금은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주주까지 더하면 4대 금융지주회사 주주에 대한 배당금이 2조원을 훨씬 넘어선다.
외국인 주주에 대한 배당은 국부 유출이라는 국수주의적 주장은 제쳐 놓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비롯한 금융위기나 경제위기 때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보다 공적자금 투입 등의 명목 아래 국민이 낸 세금을 수혈 받아 연명한 은행들이 어쩌다 좋은 상황을 만나 대규모 이익을 냈다면 주주들끼리 배당잔치, 임직원들끼리 성과급잔치를 벌이기 전에 이익의 사회 환원과 수수료 인하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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