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나는 택시 좀 타본 여자다. 한 달이면 줄잡아 30만~40만원을 택시비로 쓴다. 사람 만날 일 많고, 저녁 모임이 잦은 직업 탓이다. 덕분에 택시와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대개 씁쓸한 기억들이다. 승차 거부는 부지기수, 웃돈 요구를 받거나 요금 흥정을 벌이는 일이 다반사다.
정부 과천청사에 출입한 뒤론 황당한 일이 더 늘었다. 2009년 6월의 기억이 선명하다. 서울시가 택시 기본 요금을 1900원에서 2400원으로 올리며, 시계외 할증요금제(서울 택시가 경기도로 갈 때 요금의 20%를 더 받는 제도)를 폐지했던 때다. 청사에 닿자 택시 기사는 "몇 천원을 붙여 요금을 달라"고 했다. "할증제는 폐지된 게 아니냐"고 해도 막무가내. 그는 결국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고서야 차를 돌렸다. 한 달이면 한 두 번 이런 일이 반복됐다.
경기도에 사는 동료들도 '택시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죽전이 집인 선배는 "저녁 모임이 많았던 5월, 택시들이 '미터기 안 켜고 가는 요금'을 요구해 한 달에 100만원을 넘게 썼다"고 했다. 부천과 분당에 사는 후배들은 "최소 1만원씩을 붙여주고, 합승까지 해야 간신히 태워준다"며 "경기도민들은 사실상 시외할증 요금을 계속 내온 셈"이라고 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승차 거부를 줄이기 위해' 시외 할증제를 되살리겠다고 한다. "이젠 웃돈 주고 시외 할증 요금까지 물어야 택시를 잡겠군." 승객들은 코웃음을 친다. 택시 업계의 압력에 요금 인상의 명분을 찾아온 서울시가 꼼수를 택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더구나 이건 물가 잡기, 내수 활성화 어느 쪽과도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결정이다. 전국 모든 가구의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과 같은 KBS 수신료 인상으로 소비자 물가는 0.23% 움직인다. 택시 요금이 미치는 영향은 0.48%로 그 두 배가 넘는 충격을 준다. 택시 요금이 비싸지면 외식·소비 활동도 주춤할 게 뻔하다.
결국 서울시의 시외 할증제 되살리기는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가라'는 소리와 같다. '새나라의 서민 프로젝트'랄까. 아, 전세난에 경기도로 옮겨간 서민들에겐 '서러우면 서울 살아라'로 들린다지.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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