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구장 내 선수 전용 주차장에는 값 비싼 차들이 즐비하다. 독일 명차와 이탈리아 스포츠차를 비롯해 덩치 큰 SUV까지 다양한 종류의 멋진 차들이 들어차 있다.
메이저리거들이 값 비싼 차를 모는 건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거들의 한 해 평균 연봉이 330만달러이다 보니 위상에 걸 맞는 차들을 타기 마련이고 여기에 안전까지 감안해 고급 차를 선호한다. 물론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41만달러)을 받는 신인급은 풀타임 리거가 되기 전까지는 중저가의 차를 몰고 다닌다.
올시즌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시즌 2호 홈런을 내줬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선발투수 제레미 거드리.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타자인 라이언 가코와 스탠포드 대학 시절 배터리를 이뤘던 경력 7년의 그는 통산 41승57패로 승률이 5할 밑을 맴돈다. 하지난 3년 동안 매시즌 10승 이상을 거둬 팀 내 선발진 가운데 가장 많은 575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 정도라면 거드리 역시 홈경기를 위해 구장을 나설 땐 값 비싼 명차를 몰고 나올 법하다. 하지만 볼티모어 홈구장인 오리올 파크 선수 전용 주차장에 세워진 거드리의 자가용은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산악자전거다. 이 소형 자전거에 몸을 싣고 그는 안전벨트가 아닌 안전모를 쓴 채 엑셀인 아닌 페달을 밟고 경기장을 출퇴근한다.
거드리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이유는 몸에 밴 검소한 습관 때문이다. 집에서 경기장까지 약 5㎞에 불과한 거리를 차를 타고 다닐 경우 쓸데없이 기름과 돈을 낭비한다는 생각에 5년 전 부터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
거드리가 자전거를 고집하는 건 단순히 돈만 아끼기 위함은 아니다. 겨울과 여름철 때 난방 및 냉방 요금을 줄이자는 문제로 아내와 마찰을 빚기도 하는 거드리는 자전거를 통해 쓸데없이 쓰여지는 에너지를 줄이고 이와 맞물려 지구 환경을 보호하자는 생각에서 페달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
거드리는 구장 내에서도 독특한 선수다. 메이저리그 구장을 가면 엄청난 쓰레기에 놀라곤 한다. 선수들 전용룸인 클럽하우스는 물론 관중석 곳곳에는 많은 쓰레기들로 넘쳐난다. 특히 끊임없이 먹고 마시는 통에 일회용 용기와 패트병이 수북히 쌓여 있다. 거드리는 이처럼 재활용되는 쓰레기가 일반 쓰레기와 섞여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재활용되는 쓰레기를 직접 분리 수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다.
이 때문에 거드리는 구단에 직접 재활용 전용 쓰레기통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고 지금도 선수들이 분리해 버리지 않는 일회용품을 발견하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분리 수거에 착수한다. 재활용되지 않은 채 그냥 매립지에 묻히면 에너지 낭비에 환경 마저 파괴된다는 이유로 메이저리거라는 감투를 던져버리고 환경 보호 전도사로 탈바꿈한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타 구장들은 재활용 쓰레기 분리 수거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지만 선수나 관중들이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이다.
거드리는 혼자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자전거 사용을 독려하고 쓰레기 분리 수거에 앞장설 것을 주문한다. 거드리의 정성에 이미 팀 내 몇몇 선수들이 동참해 자전거 출퇴근을 시행하고 있고 재활용품 쓰레기도 분리해서 버리고 있다. 무엇보다 자전거 출퇴근에 대해선 따로 구장 내 체력단련실에서 스테이션 바이크를 할 필요가 없다며 좋아한다.
올해 32세인 거드리는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파워투수지만 실력에 비해 성적은 빼어나지 않은 편이다. 올시즌도 타선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평균자책점 3.93을 기록하고도 3승9패에 그치고 있다. 그래도 거드리는 동료 및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로부터 인정받는다. 검소한 생활과 지구 사랑에서 만큼은 메이저리그 톱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종률 전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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