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박종훈 LG 감독의 리더십은 차면서도 뜨겁다.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면서도 따뜻하게 감싼다.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다. 이기는 습관에 길들인다. 그 진가는 두산 2군 감독을 맡았을 때부터 발휘됐다.
2009년 7월 4일 구리구장. 박종훈 감독은 LG 2군과의 경기 선발투수로 김명제를 올렸다. 투구 내용은 형편없었다. 8이닝동안 21안타를 허용하며 18점을 내줬다. 교체는 없었다. 김명제는 47타석의 긴 승부를 벌인 뒤에야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었다. 불성실한 태도로 가해진 벌투였다. 김명제는 경기 뒤 버스에 오르지도 못했다. 잠실구장까지 따로 뛰어 올 것을 지시받았다.
박 감독의 애제자로 알려진 오재원(두산)도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 그는 2군 시절 첫 타석에서 번트를 실패한 뒤 박 감독으로부터 거듭 번트 사인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 다소 혹독한 처사에 오재원은 불만을 터뜨렸다. 경기 뒤 박 감독을 찾아가 언성을 높이며 항의했다.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말도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다음날 그는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 오히려 박 감독의 추천을 받고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한 야구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종훈 감독은 2군 선수들에게 매번 1군 무대에서의 싸울 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팀 승리보다 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흘러넘치는 의욕이 패배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야구계에서 박종훈 감독은 ‘차분한 지도자’로 통한다. 독불장군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지난해 그는 왼손 선발 공략을 위해 오른손 타자들을 타순에 대거 배치했다. 작전은 통하지 않았다. 박종훈 감독은 시행착오를 그대로 인정했다. 바로 새 라인업으로 타순을 재구성했다.
지난 17일 잠실 SK전 패배 때도 그랬다. LG는 9회 2사까지 4-1로 앞섰지만 임찬규가 4연속 볼넷을 내주며 4-6으로 역전패했다. 경기 뒤 박 감독은 “최계훈 투수코치가 임찬규를 바꾸자고 했지만 내가 놔두자고 했다”며 “(임)찬규가 무너지면 끝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반대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생각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야구”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팬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특유 신념만은 잃지 않았다. 여전히 임찬규를 마무리로 기용한다. 경기 뒤 따로 만나 “지난 부진은 훌훌 털어버려라. 자신감만큼은 잃어버려선 안 된다”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는 굳건하게 믿는다. 강철은 두드려야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두산 2군 때나 지금이나 지휘봉의 끝은 여전히 차면서도 뜨겁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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