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2012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는 특별하다. 신생구단 엔씨소프트의 합류로 9개 구단이 지명에 나선다. 지난해 78명보다 더 많은 호명이 예상된다. 8월 25일 신세계행 티켓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스카우트들이 주시하는 그들을 미리 만나본다.
① 노성호, 아마추어 최고 구속을 자랑하는 왼손 투수
② 나성범, 메이저리그를 홀린 특급 왼손 투수
③ 김원중, 미래가 더 기대되는 오른손 투수
④ 이민호, ‘컨트롤 마법사’ 꿈꾸는 오른손 투수
⑤ 이현동, 아마추어 최고의 팔방미인
⑥ 한현희, ‘뱀 직구’ 뿌리는 사이드암 투수
생년월일 : 1993년 6월 25일
체격조건 : 183cm, 78kg / 우투우타
학력 : 부산 동삼초교, 경남중, 경남고
한현희(경남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꼈다. 팀 동료, 코칭스태프 모두가 그랬다. 때는 2008년 5월. 경남중은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전라중과 전국소년체육대회 중학부 8강전을 치렀다. 경남중 선발로 등판한 한현희는 1회 3실점했지만 4회까지 추가 실점을 내주지 않았다. 5-3 리드 속에 그는 승리를 챙기는 듯했다. 하지만 5회 제구는 갑작스레 난조에 빠졌다. 볼넷과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3실점했다.
미심쩍은 볼카운트 판정이 문제였다. 한현희는 “공을 한 가운데 던져도 심판이 볼을 선언했다”며 “1번 타자였던 문경원은 방망이를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문경원은 이날 볼넷으로만 세 차례 출루했다. 이에 그는 “마운드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며 “너무 억울한 나머지 울면서 던졌다”고 토로했다. 결국 한현희는 7회 1점을 더 허용했고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뼈아픈 패배. 경기 뒤 한현희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야구장은 떠날 수 없었다. 선수단 모두가 그랬다. 제각각 “이건 아니다”라며 분개했다. 관중석에서 내려온 가족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한현희를 위로했다. 그의 누나는 대한야구협회와 교육청에 신고하면 해결될 것이라며 어깨를 다독였다. 한현희의 생각은 달랐다. 한참 뒤 숙였던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더 확실하게 던지면 해결될 일이예요.”
스스로 마음속에 뿌린 성숙의 씨앗. 3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첫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음은 한현희와 일문일답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팀 동료들로부터 ‘16차원’으로 불리는데.
한현희(이하 한) 생각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그렇게 붙여주더라.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긴 하다. 남들이 A를 떠올릴 때 B를 생각한다. 야구를 할 때도 그렇다.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도 분위기 파악은 한다. 그동안 제멋대로 군다는 지적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스투 늘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그런 별명을 얻은 줄 알았다.
한 운동을 하며 자주 웃는다. 팀 동료, 코치들과 장난도 자주 치고.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다. 훈련을 즐겁게 소화할 뿐이다. 러닝 등을 하며 몸의 한계를 느낄 때 쾌감을 느낀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스투 마운드에서도 자주 웃나.
한 타자를 상대하기 바빠 그럴 여유가 없다. 거의 머릿속을 비운다. 안타든 볼넷이든 주자를 허용해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려 애쓴다.
스투 언제부터 그런 습관을 익혔나.
한 지난해부터다. 조금 철이 든 것 같다. 처음 경남고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동료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생각 좀 하고 살라고. 너무 어리다고.
스투 왜 그런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나.
한 팀워크가 부족했다. 1학년 때만 해도 야수가 실책을 저지르면 화를 냈다. ‘너무한 거 아니야’라고 신경질도 부리고. 나중에 뒤돌아보니 많이 미안했다. ‘그들도 공을 놓치면 답답할 텐데’라고 생각하니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지금은 더 격려하고 위로하려고 애쓴다. 나는 그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들을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스투 2012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부담은 없나.
한 왜 없겠나. 한 경기라도 부진하면 머리가 뒤죽박죽이 된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잠시 말을 멈춘 뒤)상대에 많은 점수 차로 앞선 경기만 조심하면 된다. 긴장을 잃기 쉽다. 집중도 잘 안되고. 쉽게 느슨해지는데 마인드컨트롤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스투 흐트러질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한 정수찬 투수코치다. 그럴 때마다 마운드로 올라와 ‘집중해서 던져’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모르겠는데 마운드에서 잘 웃는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많이 혼난다. ‘다른 애들은 죽기 살기로 뛰는데 너는 왜 그러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솔직히 억울하다. 마운드에서 인상을 써도 웃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이빨만 드러내면 다들 웃는 줄 착각한다. 표정 관리법을 따로 배워야겠다.
스투 마운드에서의 미소가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을 텐데.
한 고교야구에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아예 입술을 깨물고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서 지적을 덜 받는 편이다.
스투 실전에서 그 효과는 어떠한가.
한 긴장을 해서 그런지 실투가 나오지 않는다. 공이 원하는 대로 꽂힌다. 제구도 잘 되고. 비디오를 확인해보고 알았는데 긴장을 하지 않으면 릴리스 포인트가 달라진다. 구속도 덜 나오고. 그래서 요즘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일부러 속으로 ‘긴장하자’라고 몇 번을 중얼거린다.
스투 타자는 주로 어떻게 상대하나.
한 까다로운 타자를 만나면 변화구 위주로 피칭한다. 하위 타순은 직구로 승부하고. 구속은 144km까지 던진다. 스카우트들의 스피드건으로는 147km까지 나왔다고 들었다. 최근 더 늘려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스투 사이드암 투수로 박현준(LG), 임창용(야쿠르트) 등과 투구 동작이 흡사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던진 건가.
한 경남중 3학년 때부터다. 위로 던지는 것보다 제구가 잘 됐다. 변화구 위력도 더 좋았고. 신기한 건 옆으로 던져야만 커브가 낙차 크게 떨어졌다. 주위에서 내 커브를 모두 슬라이더라고 생각한다. 사실 슬라이더를 던질 줄 모른다. 커브의 강약을 조절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던질 수 있는 변화구는 커브, 싱커, 서클체인지업이 전부다.
스투 강약 조절에 따라 커브의 구속 차가 심한 편인가.
한 세게 던지면 126km까지 나온다. 약하면 118km 수준이고. 내 커브는 세 가지로 나뉜다. 정석 커브와 말아서 던지는 볼, 그리고 밑에서 틀어 뿌리는 공이다. 틀어 던지는 볼이 타자에게 아마 슬라이더로 느껴질 것이다.
스투 서클체인지업은 언제 익혔나.
한 지난해다. 처음에는 스플리터를 연마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구가 잡히지 않아 일찍 포기했다. 공에 제멋대로 움직여서 애를 많이 먹었다. 서클체인지업은 아끼고 있다. 중요할 때만 사용할 생각이다.
스투 싱커는 어떠한가.
한 아직 불만족스럽다. 크게 떨어지지 않아서다. 135km 수준인데 잘못 던지면 느린 직구가 되기 십상이다. 실밥을 다르게 잡아보며 현재 투수코치와 개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잠시 말을 멈춘 뒤)사실 구속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잘 던질 수 있다.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가서 제구가 잘 되지 않는다. 졸업 전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스투 구속 증강을 위해 따로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시도하나.
한 전혀 하지 않는다. 근육이 생기면 볼을 던질 때 불편하다. 사이드암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러닝을 많이 한다. 100m를 전력으로 여러 차례 뛴다. 임창용 선배가 볼 스피드를 늘리기 위해 이 방법을 자주 썼다고 들었다. 장거리 달리기는 멀리 한다. 힘이 들어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폼도 어느 순간 엉망이 되고.
스투본인이 산만하다고 생각하나.
한 그렇다. 주위에서 모두 그렇게 말한다. 학업을 일찍 접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성격상 맞을 것 같았다.
스투 롤 모델이 임창용인가.
한 솔직히 없다. 프로야구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남의 투구 폼을 따라할 것 같아서다. 경남중 시절 이형종(전 LG)의 투구를 보고 흉내를 낸 적이 있다. 글러브를 한 번 치고 던졌는데 그 버릇을 지난해까지 버리지 못했다. (잠시 말을 멈춘 뒤)야구를 봐도 정통파 투수가 나오는 경기만 시청한다. 사이드암 투수의 투구를 보게 된다면 분명 흉내를 낼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웃음).
스투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한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솔직히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국어책을 보면 졸리기만 했다. 수학 문제를 곧잘 풀었지만 야구 재능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가족들은 내가 야구를 할 줄 아무도 몰랐다. 클럽활동으로 시작을 해서 금방 그만둘 줄 알았다고 하더라.
스투 어떤 부분에서 야구 재능이 있다고 느꼈나.
한 남들보다 약삭빠른 것 같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구속이나 변화구가 아니다. 심판의 성향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느냐다. 심판이 바깥쪽에 관대하다면 그 쪽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승패는 그 작은 차이에서 갈라진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줬더니 친구들이 놀라워했다. 잔머리로는 세계에서 따라갈 자가 없다고 했다(웃음).
스투 야구를 하며 위기를 겪은 적은 없나.
한 동삼초 4학년 때 트램펄린에서 놀다 왼쪽 어깨를 다쳤다. 뚱뚱한 녀석이 바로 옆에서 점프를 하는 바람에 몸이 튕겨나가 쇠기둥에 부딪혔다. 병원에서 바로 어깨 수술을 받았는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1년 반가량 글러브를 낄 수 없었지만.
스투 가족들이 많이 놀랐겠다.
한 막 야구를 시작했을 때 부상을 입어 많이 놀라진 않았다(웃음). 가족들을 생각하면 야구를 열심히 하게 된다. 어머니는 그간 운동화빨래방을 운영하며 뒷바라지를 해줬다. 아버지도 선박 일을 하며 못난 아들을 챙겨줬고. 두 분의 고생을 이제 덜어드리고 싶다. 야구를 잘 하는 것만이 그 해결책이다.
스투 프로무대를 밟는다면 어떤 투수가 되고 싶나.
한 긴 말은 필요 없다. 죽기 살기로 덤비겠다. 그거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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