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아직은 세 경기를 치렀을 뿐, 시기상조일 수 있다. 혹자는 좀 더 명성과 경험을 갖춘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른 한 편에선 충분한 능력과 자질이 있다고 반박한다. 그만큼 아직은 검증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독수리'의 매력은 자꾸만 '감독 최용수'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자칫 좌초될 수 있던 FC서울호가 최용수 감독 대행의 부임 이후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전 극적인 2-1 역전승, AFC챔피언스리그 알아인(UAE)전 3-0 대승에 이어 상주전에선 명승부 끝 4-3 승. 3연승의 쾌속 질주다. 14위까지 떨어졌던 순위도 어느덧 중위권으로 올라섰고,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도 확정지었다.
결과뿐 아니라 내용도 달라졌다. 서울 특유의 패스 플레이와 공격력이 살아났다. 선수들 역시 '디펜딩 챔피언'의 자신감과 열정을 되찾은 모습이다. 상주전만 하더라도 시즌 초 서울이었다면 무승부나 역전패를 당했을 법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일궈냈다. 최 대행의 어떤 매력이 서울을 변화시킨 것일까.
◇ 깍쟁이 서울을 하나로 만든 '형님' 리더십
FC서울은 종종 프로야구 LG트윈스와 비교된다. 서울팀 특유의 개인주의와 '깍쟁이' 분위기가 선수단 내에 흐르기 때문. 최 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직후 곧바로 3박 4일의 합숙훈련 카드를 꺼내든 것은 그래서 의외였다. 불만이 나올 법도 했지만 선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미드필더 하대성은 "훈련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치님이 원래 선수단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분이다.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하시다 보니 훈련장에도 웃음꽃이 핀다. 마치 옆집 형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합숙훈련 역시 누구 하나 불평불만 없이 성실히 임했다는 것. 하대성은 "사실 불만을 가질 분위기도 아니었지만"이라고 웃으며 "선수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편하고 좋은 분위기였다. 유익한 합숙이었다"고 강조했다.
주장 박용호도 "코치님은 선수들의 이야기에 늘 귀를 기울인다. 개개인의 습성을 비롯해 사소한 것도 놓치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 대행은 훈련 시간을 제외하면 선수와 의사소통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같은 엄격함보다는 형님 같은 친밀함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가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뜻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울에겐 더더욱 필요한 리더십이었다. 나아가 그가 강조하는 '팀을 위한 헌신'을 솔선수범하는 모습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 누구보다 서울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
최 대행은 선수부터 코치까지 10년 넘게 서울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누구보다 서울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이는 각기 다른 재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앙 미드필더 고명진이다. 2003년 석관중을 중퇴하고 프로무대에 진출, '선수-코치-감독 최용수'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코치님은 내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다. 지난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할 때도 유일하게 믿어주신 분"이라고 털어놨다. 신뢰는 결과로 이어졌다. 고명진은 최근 3경기 모두 선발로 나서며 서울의 중원에 힘을 불어넣었다. 제주전에선 결승골도 넣으며 최 대행을 날아오르게 했다.
방승환과 이규로도 각각 공격수와 오른쪽 풀백으로 다시 경기에 나서며 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최대 숙제로 남아있는 데얀과 몰리나의 공존을 최 대행이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관심이다.
◇ 빅클럽엔 스타감독이 필요하다
최 대행은 경기 후 기자회견 때 녹초가 되어 들어오곤 한다. 경기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다. 아르마니 양복을 비에 흠뻑 적시며 팀을 이끄는 리더십, 골이 터졌을 땐 선수보다 더 격렬한 세레모니를 펼치는 열정. K리그에서 보기 드물었던 유형의 감독이다. 그 덕에 요즘 서울 경기를 보는 팬들은 경기장보다 벤치에 눈에 갈 때가 많다. 선수들 역시 이런 최 대행의 뜨거움에 전염된 모습이다.
화끈한 입담도 눈에 띈다. 취임 기자회견 당시 "원래 코치로 있으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지만 눈은 감고 있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설파했다.
윤성효 수원 감독의 "서울과의 맞대결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발언에는 맞불을 놓았다. "절대로, 절대로 수원에 질 수 없다"며 "윤 감독님의 발언이 우리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 반응을 안 할 뿐이지 기다리고 있겠다"며 라이벌전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착한 모범답안' 인터뷰가 범람하는 K리그에서 팬들이 기다려왔던 바로 그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그는 서울의 '레전드' 출신이다. 이만하면 빅클럽에 어울리는 스타감독의 재능을 충분히 가졌다고 할 만하다.
◇ 성적이 말해준다
감독 대행을 맡은 뒤 3연승을 거뒀다. 특히 리그전 상대가 지난해 준우승팀 제주와 돌풍의 팀 상주였다. 서울 정도의 스쿼드를 가진 팀으로서 당연한 성적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똑같은 팀으로 황보 감독 시절엔 1승3무3패에 머물렀고, 신생팀 광주에도 0-1로 패했다. 서울에 가장 목말랐던 것은 내용보다 결과였다.
최 대행 스스로 던진 "스포츠는 결과가 말해준다. 승리 공식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 약간의 운이 따라야 하지만 AFC챔피언스리그 조 1위까지 탈환하고, 주말 경남전에서도 호성적을 이어간다면 '반짝 효과'란 폄하에는 좀 더 신중함이 따라야 할 것이다.
서울은 황보관 감독 사임 당시 당분간 감독 선임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최 대행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한 서울 구단 관계자는 "최 대행 부임 이후 선수들의 뛰는 모습이 달라졌다"며 긍정적인 변화를 언급했다.
더불어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낸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고려가 따르지 않겠나"며 정식 감독 취임 가능성도 열어뒀다. 서울과 '독수리'의 궁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이유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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