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해설시리즈24]기획재정부, 소비자물가 안정 추진
[아시아경제 황상욱 기자] 지난해 하반기 물가정책은 배추, 무, 마늘 등 '농산물 가격안정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월까지 포기당 3000원 내외하던 배추가격이 9월 말엔 최고 1만2410원까지 3~4배 폭등했다. 시장가격보다 약 70% 낮은 가격으로 배추할인 판매를 시작하자 이를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새벽부터 5~6시간 동안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등 배추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김장철 배추가격 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수급안정정책을 추진했다. 각각 27%, 30%의 높은 관세율이 적용됐던 배추, 무의 세율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모두 0%로 낮추는 긴급할당관세를 추진하고 무, 배추의 직수입 물량을 늘린 한편, 월동 배추를 조기에 출하하는 등 공급물량 확대를 통한 수급 및 가격안정을 추진했다.
이용재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 나라경제 기고를 통해 "사실 2010년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2.9%로, 수치만으로는 전반적으로 안정 수준이었다"며 "농산물을 제외한 공산품 및 서비스 가격이 환율하락 등의 영향으로 안정세를 보이면서 물가안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과장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장에 따르면 8월까지 물가상승률이 2%대 수준이었던 상반기와 달리 여름철 기상이변에 따른 작황부진으로 9월 이후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 가격이 급등하면서 9월 3.6%, 10월 4.1%, 11월 3.3% 등 다소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국민들이 자주 구입하는 채소류를 중심으로 가격이 크게 올라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품목 위주로 구성된 신선물가지수 상승률은 9월 45.5%, 10월 49.4%, 11월 37.4%에 달했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5.45%에 불과하지만 농산물 가격급등이 전반적 물가안정 기조를 흔들 정도로 매우 중요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정책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2011년 물가와 관련한 대내외 여건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다. 세계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되는 한편, 국제 기상여건은 예년보다 좋지 않아 우리가 거의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국제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회복에 따른 소득 증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대학등록금, 공공요금 등 서비스 요금의 인상 여부와 높은 수준의 임금상승률이 물가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서민생활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2011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3% 내외의 수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하반기 채소류 등 농수산물의 수급불안정과 가격상승을 경험했던 만큼 올해는 기상조건 변화에 따른 농업 생산량의 변동성에 대한 관측기능과 수급조절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 관측대상과 관측횟수를 확대해 정확성을 높이는 한편, 배추, 무, 마늘 등 채소류의 계약재배 면적을 9%에서 15%로 확대하고 수산물 비축규모도 두 배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400억원 수준이었던 관련 예산을 1400억원 수준으로 대폭 확대한다. 또 직거래 장터, 인터넷 공동구매 등 직거래와 전자거래를 확대해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농수산물 도매가격의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도록 경매 이외의 정가·수의매매 방식을 활성화하는 등 유통구조개선 대책도 추진한다.
생산자의 가격 결정에 대한 소비자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도 시행한다. 시장가격에 대한 정보공개범위를 확대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소비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함으로써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조정기능을 높이고자 한다. 한국소비자원의 온라인 상품정보시스템(T-Gate) 가격정보 공개대상에 지방공공요금 등을 포함하는 등 공개대상을 현재 80개에서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48개 주요 생필품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국내외 가격차조사를 생활밀접품목 위주로 보완하고 품질에 따른 차이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조사방법을 개선하는 한편, 분기별로 실시해 국내외 가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발족한 '주부 물가 모니터단'을 활용해 체감물가 수준과 정책제안 등을 검토, 정부의 물가정책에 반영할 것이다.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상시점검활동도 강화한다.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국제가격 조사결과 외국에 비해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유모차, 아동복 등 수입품은 세율을 인하해 가격인하를 유도하고, 옥수수, 밀, 대두 등 최근 국제가격이 상승한 수입곡물은 무관세를 추진해 국내물가에 대한 파급효과를 줄일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다.
주요 생필품을 중심으로 품목별 특성에 맞는 유통구조 개선방안도 마련한다. 세제, 화장지 등 생활용품과 유모차, 기저귀 등 아동용품, TV 등 가전제품에 대해 유통단계별, 업태별 유통구조를 조사·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만들 것이다.
특히 국내외 가격차가 큰 것으로 조사된 화장품의 경우 병행수입을 제약하는 요인을 개선해 유통채널을 다양화하는 등 경쟁촉진을 유도할 계획이다. 또 통신, 교육, 에너지, 의료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분야를 대상으로 3단계 진입규제 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가격안정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정부가 관리 가능한 중앙 공공요금은 인상을 최소화해 안정기조를 강력하게 견지한다. 지방 공공요금도 안정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행정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지방물가 종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지역 간 물가안정 경쟁을 유도할 방침이다. 서민들의 소비지출 중 비중이 높은 교육비, 통신비, 자동차 보험료 등 서비스 요금의 가격안정을 위한 제도개선도 추진한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창출과 함께 물가안정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두고 서민생활 안정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시장경제가 성숙하고, 민간 부문의 역량이 커진 개방경제에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주요 생필품의 가격동향을 세심하게 점검해 수급불안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 대응해 나가고 중장기적으로 정보 불균형 해소, 유통구조 개선, 시장감시활동 강화 등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들을 개선해 시장의 가격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활발한 경쟁을 통한 시장의 자율적 가격안정만이 서민생활의 안정기반을 근본적으로 튼튼하게 할 방법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물가안정을 위한 100가지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황상욱 기자 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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