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영화 '초능력자'가 개봉 2주차 만에 전국 160만 관객(배급사 집계기준)을 돌파했다. 신인 감독으로는 이례적인 결과다. '강동원 고수' 투톱 흥행 카드가 '초능력'이라는 소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다.
'초능력자' 개봉과 함께 아시아경제 스포츠투데이와 만난 김민석 감독은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도 "욕먹지 않을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 김 감독 스스로 인정했듯 '초능력자'는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100만 관객과 만나보지 못하고 결국 기억에서 잊힌 신인감독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출발은 '개봉 첫 주 100만'이라는 결과만 놓고도 충분히 성공적이다.
"사실 이 영화는 순제작비가 29억원입니다. 몇백억원이 들어가는 영화와 차이가 있죠. 제목만 보시고 하늘을 나는 주인공이나 화려한 특수효과를 기대하셨다면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상상과는 달라도 '재미있다'는 느낌만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줄거리만큼 단순하다. 초능력을 갖고 있는 자와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자의 대결이다. 볼트와 너트이기도 하고 자석의 양극이기도 하지만, 결국 공존할 수 없는 창과 방패다. 김민석 감독은 "만나면 안 되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되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초능력자'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웅담과는 전혀 다르다. 두 주인공의 대결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초능력이라는 SF 소재를 다루면서 어중간하게 만들 순 없었다"며 "할리우드처럼 보여줄 게 많은 환경이 아니라면 권선징악을 따라 진부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능력자' 시나리오 초고는 스크린 위로 형상화된 것보다 훨씬 어둡고 무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완화한 것이 두 '꽃미남' 배우의 캐스팅이고 또 두 외국인 배우의 출연이다. 극중 알(에네스 카야 분)과 버바(아부다드 분)는 놀라울 만큼 천연덕스럽게 우리말 연기를 해낸다. 가끔은 한국인 뺨치는 자연스러운 발음에 더빙을 의심할 정도다.
"애초에 초인 캐릭터는 지금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고 괴물처럼 기괴한 인물이었습니다. 규남도 지금처럼 밝은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좀 더 양지로 끌어내야 했습니다. 알과 버바 캐스팅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웃음 코드를 그들에게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외국 배우가 많지도 않은 데다 우리말로 하는 웃음의 뉘앙스를 잘 살려내는 배우가 드물었죠. 100여명을 본 끝에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터키 출신인 에네스 카야는 한국 생활만 8년째인 한양대 졸업생으로 지난 1년간은 축구팀 FC 서울의 귀네슈 감독 통역을 맡았다. 가나 출신인 아부다다는 현재 의대생으로 한국 체류 기간이 채 1년 6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천연덕스럽게 사투리 연기를 소화해냈다. 에네스 카야의 경우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라 외국인 노동자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게 했다고 한다.
김민석 감독은 고속도로를 타고 감독 데뷔에 안착한 충무로의 '모범사례'다.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고학을 전공하던 그는 졸업 후 영화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단편 작업을 하다 2004년 단편 '올드보이의 추억'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 조감독을 거친 뒤 곧바로 감독으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놈놈놈' 후반작업 즈음에 초능력자라는 소재가 떠올라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죠. 조수생활 했던 세 작품 다 기존의 장르영화에서 벗어난 작품들이어서 저 역시 비슷한 탈장르의 영화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운 좋게 같은 제작사 작품인 '전우치'를 준비하던 강동원씨가 사무실을 오가며 제가 쓴 시나리오 초고를 본 뒤 출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고수씨가 또 시나리오를 보고 한번에 출연을 결정했죠. 운이 좋았어요."
김민석 감독은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메카닉물이나 탐정물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작이건 저예산 영화건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것이다. '초능력자'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속편을 찍겠냐는 질문에는 "이후 이야기보다는 이전 이야기를 해보고 싶긴 하다"며 웃어보였다. 진지하지만 개구쟁이 소년 같은 신인 감독의 미소였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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