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재완 기자]인권위가 27일 오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를 통해 60.2%의 여성 연기자가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가 27일 오후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예조는 "지난해 3월, 온 국민과 저희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준 장자연 씨 자살사건은 그동안 대중문화예술계에 만연해 있던 인권침해의 실상을 알게 해 준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에 연루되어 입건된 드라마 PD를 비롯한 12명의 수사 대상자들은 그로부터 5개월 후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초 수사상황에 기대를 많이 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고 성명서를 시작했다.
한예조는 "이 일을 계기로 저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표준약관의 제정을 추진했으며 2009년 7월 표준약관이 정식으로 발표되면서 관련 단체와 소속사들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강요해 왔던 인권침해와 불공정 계약 조항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늘(27일)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그동안 금기시되고 베일에 쌓여왔던 여성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고통이 세상에 처음 공개적으로 밝혀진 날이다"라며 "조사 과정에서 일부 연구원들은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접하면서 눈시울을 붉혔으며, 또 어떤 이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얘기가 모두 사실이었다며 분노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사실상 콘텐츠 제작과 이를 편성하고 송출하는 권한이 방송사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중문화예술계의 온갖 병폐는 공중파 3사의 파렴치함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발표를 보고, 일부에서 제작사나 매니지먼트사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범죄행위는 그 자체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생존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를 강력히 요청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더불어 저희 한예조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계의 혁신을 위해 더한층 노력하겠다"고 글을 맺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 국가인권위원회, 여성 대중문화예술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에 부쳐
대중문화예술계에 인권의 새 봄 오기를
인권침해는 대중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병폐…정부의 대안 정책 기대
지난 2009년 3월, 온 국민과 저희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준 장자연 씨 자살사건은 그동안 대중문화예술계에 만연해 있던 인권침해의 실상을 알게 해 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사건에 연루되어 입건된 드라마 PD를 비롯한 12명의 수사 대상자들은 그로부터 5개월 후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초 수사상황에 기대를 많이 했으나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스타덤에 올라 시청자로부터 갈채를 받을 나이에 돌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고인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하나둘 세상에 알려지면서, 저희는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계에 도움을 호소하는 한편, 저희들 스스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꿋꿋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배우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습니다.
노예계약서에서 표준약관으로
이 일을 계기로 저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표준약관의 제정을 추진하였으며 2009년 7월 표준약관이 정식으로 발표되면서 관련 단체와 소속사들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강요해 왔던 인권침해와 불공정 계약 조항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조항이 계약서에서 삭제되었고, 쌍방 동등한 입장에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도록 하는 등 그동안 노예계약의 오명을 썼던 계약관행에 제동을 거는 조치가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한예조는 대중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인권침해가, 우연한 사고이거나 일부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권위 있는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입니다.
인권침해의 참상
오늘은 저희 대중문화예술인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하여 그동안 금기시되고 베일에 쌓여왔던 여성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고통이 세상에 처음 공개적으로 밝혀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수개월 동안 장자연 씨 자살 사건을 계기로 대중문화예술계에 만연해 있는 여성 대중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해 왔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일부 연구원들은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접하면서 눈시울을 붉혔으며, 또 어떤 이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얘기가 모두 사실이었다며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아픔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2차 피해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과연 누가 우리 대중문화예술계를 이토록 처참한 인권의 사각지대로 만든 것일까요?
공중파 방송사의 파렴치함
사실상 콘텐츠 제작과 이를 편성하고 송출하는 권한이 방송사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중문화예술계의 온갖 병폐는 공중파 3사의 파렴치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무리 방송법에 외주제작 비율을 의무화했다 해도 여전히 그들은 제작사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저가 덤핑계약을 강요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예술계에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경제 치외법권 분야이며, 그 정점에 공중파 방송사들이 있습니다. 제작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편성을 따야 하고, 매니지먼트사는 기를 쓰고 소속 배우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로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은 캐스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저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숙명처럼 의존적이고 예속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제작사는 개인 재산까지 출연하면서 정성을 다해 작품을 만들고는 결국 망했으며,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던 소속사 대표는 업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작품을 올린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어렵사리 출연해도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 결국 이 같은 진흙탕 싸움에서 공중파 방송사들만 배를 불리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부패한 난장판에서 청춘을 불사르던 한 여배우의 유지를 받드는 이 자리에 놀랍게도 그들은 없습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는 바로 공중파 방송사들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쁨주고 사랑받는 방송사가 아니며, 만나면 좋은 친구도 아닙니다. 더구나 국민의 방송이라니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들입니다. 이것이 장자연 씨 자살사건이 주는 경고이자 교훈입니다.
정부의 대안 정책을 기대하며
저희는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발표를 보고, 일부에서 제작사나 매니지먼트사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범죄행위는 그 자체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오히려 동종업계의 잘못에 대해 자정의 노력을 펼치는 연예매니지먼트협회나 연예제작사협회 등 관련단체의 노력을 지지하며, 더욱 굳건한 연대로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과거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 선수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의 실상을 추적조사하여 발표한 바 있습니다. 스포츠업계와 대중문화예술계는 산업의 특성이 유사하고 그 안에서 특히 여성들이 당하는 피해유형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조사 형식을 빌어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정성을 쏟아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던 대중문화예술계의 아픈 현실에 다가섰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저희는 생존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를 강력히 요청합니다.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사생활이 보호되고 그들로 하여금 국민의 일원으로 살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래 전에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대중문화예술인지원센터의 설립을 추진해 왔으나, 예산상의 문제로 좌절된 바 있습니다. 대중문화예술인지원센터는 정부나 외부단체에서 주관해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정부 지원 아래 관련당사자로 하여금 지원센터를 운영하도록 하고 각계의 법률전문가와 의료진 복지전문가들이 도와주신다면 대중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인권침해나 생존을 위협하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인권을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더불어 저희 한예조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계의 혁신을 위해 더한층 노력하겠습니다.
2010년 4월 27일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 김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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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 기자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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