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말레이시아로 투자이민을 떠났던 후배기자가 찾아왔습니다. 1년이 훨씬 지났으니 ‘자리를 잡았겠지’ 하는 생각에 반갑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후배는 의외의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짐을 싸서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후배는 다행히 한국에서 살던 집은 전세를 놓고 떠났기 때문에 살 곳은 있는데 먹고 살 방법이 없어 걱정이라고 푸념했습니다.
후배가 이민에 실패한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정착하려면 회사를 설립해야 하는 등 일련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경제위기로 환율이 치솟아 당초 예상했던 자금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있었던 시간이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그 후배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후배를 생각하면서 그나마 한국에서 버텼던 우리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침체의 긴 터널에 진입한 지도 1년이 다 돼 갑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우울한 나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깊으면 동이 튼다고 침체의 끝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경기선행지수와 소비지수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고, 주식시장도 큰 탈 없이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뇌관으로 생각했던 금융기관 부실처리 문제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경기가 2분기에 저점을 통과했다는 경제연구소의 발표도 나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올 연말 경기가 가장 좋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를 살리는 동력이 건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재정지출과 금리인하로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지만 그것이 투기로 연결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요.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이와 관련, “만일 투기열풍을 잡지 못하면 회복되려던 경기가 다시 주저앉아 더블 딥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지금 한국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지금 출구전략을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는데 시점상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출구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출구전략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시중에 넘쳐나는 돈을 빨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러면 1차적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시중에 넘쳐나는 돈이 산업자본화 되면 버블도 사라지고 일자리도 생겨나는 등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경기가 살아나느냐, 아니면 더블딥에 빠지느냐 결정됩니다. 지금처럼 투기와 비합리적 소비가 만연한다면 살아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습니다.
1934년 케인스는 그의 명저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낙관의 오류는 버블을 낳고 비관의 오류는 장기불황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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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강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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