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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오만과 동정

시계아이콘01분 45초 소요

대형 교통사고가 난 후 차량들의 흐름이 사고 전처럼 회복되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 장소가 일방통행의 고속도로상이라면 상태가 더 심각합니다. 순찰차와 구급차에 이어 견인차와 청소차까지 왔다 가면 대충 정체가 풀립니다만 차량의 주행속도가 빨라지려면 한참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장의 수습에 걸리는 시간보다 그 현장을 꼭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지나치려는 드라이버들의 호기심 때문에 개별 차량들의 주행속도가 느려지는 현상 때문입니다. 현장부근에 이르러 승용차 한 대마다 밟는 브레이크 등이 수km 뒤로 전달되며 정지와 주행이 반복되다가 또 다른 추돌사고로 연결되기도 하지요.

만신창이가 된 사고 장소를 조기에 정리하는 문제보다 운전석의 창문까지 내리고 휴대폰으로 사고현장을 촬영하려는 목격자들을 빨리 통과시키는 경찰의 수신호야말로 고속도로 소통의 핵심입니다. 정체시간이 길어지면 멀리 수십km 밖에서는 아예 시동을 끄고 눈을 붙이는 앞차의 운전자들을 뒤차의 운전자가 깨워야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현장은 진작 수습됐지만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차 속의 화제는 단연 ‘길이 언제 뚫릴까’라는 사실 하나로 집중됩니다. ‘무슨 사고야?’라는 궁금증이 ‘ㅇㅇㅇ라는 x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라는 불만으로 바뀌고 나면 도로는 하나의 거대한 스트레스 공간으로 변합니다. 어떤 뉴스도 음악도 그 공간을 벗어나기까진 위안이 못 됩니다.

지난 일주일간 우리나라 정치현장이 바로 고속도로의 초대형 교통사고 직후 모습과 흡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모처럼 ‘굿바이 코리아’에서 ‘바이코리아’로 돌아서는 증시의 터닝 포인트에서 터진 돌발악재가 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인재(人災)라는 사실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미디어법’은 내용의 문제보다 절차의 문제로 비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을 알려서 절차를 덮어보겠다는 여권의 발상이 더욱 문제를 키워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다수의 오만이 부각되는 것만으로도 여론은 소수에 대한 동정으로 기울기 마련인데 석연치 않은 찬성표의 여러 징후로 보아 여론에 호소하기엔 설득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판의 바둑에 승부수라고 던진 게 패착임을 빨리 자각해야 전체 판세가 보이거늘 그 패착에 대한 미련 때문에 더 큰 악수를 두고 있는 국면. 뭔가 힘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초조함이 내부로 비등해 급류 속에 두 발을 다 담근 채 돌아서기에는 대단히 민망한 자세로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잊혀지기보다 ‘왜 그 법이 필요한가?’란 당위의 문제에서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나?’란 의혹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교통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치려던 이들이 매끄럽지 못한 수습과정을 보며 정체 속에서 하나 둘 사고에 대해 얘기하며 브레이크 등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


‘둘 다 똑같다’에서 강한 쪽이 ‘오만’으로 비치는 순간 약한 쪽에 이유 없는 동정이 쏠리기 마련이죠.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야가 그야말로 피장파장입니다. 경제회복에 대한 약간의 자신감을 정치주도로 조기에 연결하려는 지나친 강박관념이 빚은 ‘한여름 밤의 꿈’… 그 꿈을 깨라고 보내는 메시지의 엄중함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한국정치의 현실.


대학이 방학을 하고 국민들이 휴가를 떠나면 잊혀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한 정치는 각박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제 집안에서 벌어진 불화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가고 다시 거리에서 해답을 찾는 모습이 노무현 정권 초기의 탄핵사태와 참으로 닮아있지 않습니까?


그 때 결과적으로 누가 이겼는가를 지금 여야의 처지가 뒤바뀐 상황에서 양쪽이 다 계산에 넣고 있으니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이 됩니다. 사회전반에 걸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내며 어쩌면 ‘미디어’란 단어는 2009년 최악의 단어로 기억될 것입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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