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말 우승했어야 하는데…"
올 시즌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시즌 개막전인 KEB인비테이셔널대회가 끝나고 중국 광저우 인근 동관의 한 식당에 마주앉은 최광수(49)는 10위라는 성적이 못내 아쉬운 듯 했다. "9번홀이 고비였어. 거기서 파세이브만 했으면 후반이 쉬우니까 2타 정도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는데". 그는 수저를 들 생각도 없이 여전히 경기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실 3라운드까지 공동 3위의 분전으로 호주의 리차드 무어, 최인식(26) 등과 함께 당당하게 챔피언조로 경기를 시작했던 그에게 마지막날 3오버파는 불만스러울수 밖에 없는 스코어였다. 그가 고비라고 생각했던 9번홀에서는 특히 티 샷이 워터해저드에 빠졌지만 극적인 리커버리 샷으로 볼을 홀 1.5m 지점에 붙여놓고서도 보기를 했다.
하지만 85년 팬텀오픈을 기점으로 24년째 투어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그가 단 한 대회를 두고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생소했다. 더욱이 50의 나이를 생각하면 젊은 선수들과 우승경쟁을 벌였다는 자체가 박수를 받을 수도 있는 투혼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복기가 심해?"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형규가 다음 주 월요일(13일) 입대하거든. 그 전에 뭔가 좀 보여주려고 했지".
아들 형규(22) 역시 프로골퍼다. 국내는 물론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무대에서도 흔치않은 부자(父子)골퍼인 셈이다. 형규는 아버지와 달리 182㎝의 건장한 체격으로 하드웨어는 더 좋지만 2007년 한국오픈 공동 47위가 최고성적일 정도로 아직 기량이 설익었다. 지난해에는 2부투어에서 활약했다.
최광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지난 겨울 내내 하루에 몇시간씩 땀흘리며 근력훈련하고, (젊은 선수들하고는) 거리가 안되니까 숏게임이라도 더 잘하려고 진짜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쉬움을 한 번 더 곱씹은 그가 "할수 없지. 주말에 한번 더 기회(토마토저축은행오픈)가 있으니까 잘 쳐 봐야지"라며 드디어 후회를 툭툭 털어냈다.
최광수는 '독사', '승부사'라는 애칭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승부근성을 앞세워 그동안 15승이나 수확했고, 상금왕에도 네 차례나 등극했던 한국의 간판스타다. 2005년에는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셔널타이틀' 한국오픈을 제패하는 '노장투혼'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해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9월 삼성베네스트오픈에서는 4위에 올라 부활의 가능성도 보였다.
그가 갑자기 왼쪽 손을 내밀며 웃었다. "그래. 갈비뼈가 다나가고, 이렇게 손이 뭉그러졌었는데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거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직도 그립 잡기가 불편하다는 그가 이번엔 '부성애'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쯤은 아들놈과 챔피언조에서 맞짱 뜨고 싶은데". 최광수의 마음은 이 때 이미 다음 대회장인 롯데스카이힐김해골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