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K-우먼]일레이나 리 '기회는 거칠게 찾아오기도…실패·실수 포용하며 나를 깨닫길'

일레이나 리 CNN 인터내셔널 수석부사장
CNN 해외본부서 가장 높은 임원, 동양인 최초로 여성이 꿰차
뉴스, 혼자 아닌 모든 팀 함께 논의…팀원 존중 태도 성공의 바탕
영감 준 '인생 멘토'는 어머니, 도영심 유엔 스텝재단 이사장
글로벌 리더 되기 위해선 다양한 관점·문화 받아들여야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오는 10월 개최하는 여성리더스포럼에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파워 K-우먼'으로 선정합니다. 인종·국경·장애 등 경계를 극복하고 도전하고 무너뜨린 인물들을 '파워 K-우먼'으로 정했습니다. 차별에 위축되거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맞서 싸운 사람들의 가치를 널리 알려 청소년과 여성 등에게 새로운 리더십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친 세상에 위로를 주고, 누군가의 롤모델로 자리 잡아 공동체가 다시 나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일시 | 2022년 10월 19일(수) 오전9시~오후5시20분장소 |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2F)※세부사항은 아시아경제 홈페이지 상단 '2022여성리더스포럼'을 참고해주세요.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기회는 누군가가 준비되기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기회는 거칠게 찾아오기도 하죠."

일레이나 리 CNN 인터내셔널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부사장 겸 글로벌 기획 콘텐츠 총괄본부장은 2006년 처음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연소 본부장을 제안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입사 9년 만에 이뤄진 초고속 승진이었다. 리 수석부사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 이 직책을 제안받았을 때를 돌아보며 "최연소 임원이 될 것이라는 부담감에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당시 상사에게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상사는 오히려 "(너는) 이미 준비가 됐다"고 답했다고 한다.

리 수석부사장은 아태 지역 본부장에 오른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2014년 CNN 내 해외본부(미국 이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임원 자리인 수석부사장에 올랐다. 전 세계 뉴스 채널의 핵심 임원 자리를 동양인 최초로 여성이 꿰찬 벅찬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이, 인종, 성별의 벽을 넘어선 그는 세계적인 뉴스 채널 CNN에서만 25년, 그중 8년간 수석부사장으로 직장 생활을 했다.

리 수석부사장은 아태 지역 수석부사장에 오른 이후 초기에 외부 미팅을 하러 가면 열에 아홉은 자신을 통역사로 오해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CNN이 미국 회사라 사람들이 보통 백인 남성 혹은 아시아계 남성이 CNN을 대표해 미팅에 참석할 것이라고 기대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리 수석부사장은 "CNN에서 근무하며 (인종, 성별 등과 관계없이) 늘 존중받는다고 느껴왔고 그 덕분에 25년 동안 일할 수 있었다. 의견이 존중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곳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CNN, 혼자 일하지 않아…인재 선발 시 다양성 높이려 노력해야"

리 수석부사장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종일 뉴스와 함께한다. 오전 편집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할 뉴스를 검토하고 일과 중엔 홍콩, 아시아 팀과, 오후에는 영국, 저녁에는 미국과 연락하며 전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글로벌 뉴스 채널의 최고위급 임원으로 짧은 순간에도 수십, 수백개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내가 맺어가는 관계가 필요하고 이 모든 연결성을 뉴스룸에 가져와야 한다"면서 안건을 정하는 등 뉴스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는다고 했다.

리 수석부사장은 2018년 북미정상회담, 2019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CNN 보도를 진두지휘했다. 그가 취재팀을 총괄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바로 2017년 방송한 다큐멘터리 ‘비밀국가 : 인사이드 노스 코리아’ 취재 경험이었다. 리 수석부사장은 "(다큐멘터리 취재) 당시 CNN 특파원인 윌 리플리와 여러 차례 방문해 북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들이 외국 기자들에게 제한을 두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리 부사장이 1997년 입사 이후 CNN에서 취재, 보도한 내용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결과물이 됐다.

2017년 북한을 방문한 일레이나 리 CNN 수석부사장(왼쪽에서 세번째)과 특파원 윌 리플리(맨 왼쪽), 팀 스왈츠(왼쪽에서 두번째), 저스틴 로버트슨. (사진제공=CNN)

리 수석부사장은 인터뷰 중 여러 차례 ‘팀(team)’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뉴스를 결정할 때 혼자가 아닌 모든 팀이 사안을 파악해 준비해오면 편집회의에서 함께 논의해 판단한다고 했다. 그는 "CNN은 세계적으로 가장 열악한 곳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고, 팀으로 일한다. 절대 혼자 일하지 않는다"면서 "설령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함께 일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동료들은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오래 견디질 못한다"고 강조했다. 팀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태도가 성공의 바탕에 있었다.

리 수석부사장의 태도는 CNN의 다양성 강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CNN 국제다양성위원회 창립 멤버다. 전 세계 위원들이 매달 한자리에 모여 CNN이 만드는 사업과 콘텐츠에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Diversity·Equity·Inclusion)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리 수석부사장에게 현 시점에서 직장 내 여성의 지위가 더 올라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를 묻자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인재를 선발할 때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단계이며 시니어 레벨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힘줘 말했다.

◇"실패와 실수 받아들이는 과정 통해 나를 깨닫길"

리 수석부사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조지타운대와 뉴욕대 저널리즘스쿨을 졸업한 뒤 1997년 CNN 뉴욕지부 PD로 입사했다.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된 배경에는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 기억이 있었다고 밝혔다. 리 수석부사장은 "한국이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로 급변하는 시기인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내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폭발적인 성장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학창 시절 가족들이 정치적인 사안이나 한국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그 시기 언론은 폭발적으로 발전했고 양질의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과 진실에 책임을 지지 않는 추한 언론을 보며 그 차이를 깊이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20대를 미국에서 보낸 그는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나이가 들어가며 다양성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전환하고 또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특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입사 이후 지금까지 큰 성과를 척척 만들어낸 리 수석부사장이지만 CNN에서의 생활이 매번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입사 후 4년간 미국 뉴욕에서 숨바쁘게 시간을 보낸 뒤 ‘번아웃’이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3개월간 서울에서 휴식 시간을 보낸 뒤 가족들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냈지만, CNN에서 그를 붙잡았다. 뉴욕이 아닌 CNN 홍콩 지사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됐고 그곳에서 또다시 열정을 찾게 됐다.

(사진제공=CNN)

리 수석부사장에게 영감을 준 ‘인생 멘토’는 바로 어머니, 도영심 유엔 세계관광기구 산하 스텝재단 이사장이다. 도 이사장은 1960년대 당시 여성으로는 흔치 않게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 위스콘신대 학사, 오클라호마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리 수석부사장은 "어머니는 남성이 특권을 누리고 가족 내에서 우월한 대접을 받던 한국 사회에서 다섯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딸이 교육을 받아 남성 중심 사회에 합류해 사회인으로 자리 잡게 하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열망이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어머니를 따라 본인도 미국 유학을 선택했고 CNN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온종일 바쁜 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리 수석부사장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일까. 그는 ‘고요함에 머문다’고 답했다. 시간이 날 때면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소음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갖고, 산책이나 등산을 하면서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후배 언론인과 여성 직장인들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실패와 실수를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의 실패에서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알고,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또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호기심을 바탕으로 다른 문화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지타운대 역사·국제관계학 학사 ▲뉴욕대 저널리즘스쿨 석사 ▲1997년 CNN 뉴욕지부 PD 입사 ▲(현) CNN 인터내셔널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부사장(2014~) ▲세계경제포럼 ‘젊은 글로벌 리더’ 선정(2007) ▲콘텐트아시아 ‘올해의 아시아 여성 언론인상’ 수상(2018) ▲아시아소사이어티 ‘아시아 21세기 젊은 지도자’ 선정(2018)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국제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