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기자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대규모 빚탕감 정책이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한계에 부딪힌 금융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포용정책의 일환이라지만 자칫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성실한 부채 상환자들의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잦은 빚 탕감책에 금융 시스템의 원칙까지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신용회복위원회 등은 보증부 대출에 대한 채무조정 기준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현재 상각채권은 20~70%, 미상각채권은 0~30% 채무원금을 감면하고 있다. 이번에 개선책이 시행되면 앞으로 대위변제 후 1년 이상 경과한 미상각채권에 대해서는 상각 여부와 관계없이 감면율을 상각채권 수준으로 확대(0~70%)된다. 전제조건도 대위변제 후 1년 경과에서 6개월로 범위를 확대해 다음달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앞서 금융위는 신복위 채무조정 특례, 개별 금융회사 프리워크 아웃 특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조성 등 ‘취약 개인채무자 재기지원 강화방안’의 적용시기를 올해 6월 말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이 방안은 금융위가 코로나19에 따른 무급휴직, 일감상실 등으로 소득이 감소해 가계대출 상환이 곤란한 개인채무자가 가계대출을 연체해 금융이용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시행해 온 정책이다. 벌써 세 번째 연장이다. 유예된 개인채무만 1조원에 달한다.
프리워크 아웃 특례는 2020년 2월 이후 생계비를 제외한 월 소득이 월 채무상환액보다 적어졌다면 최대 1년간 신용대출과 정책금융대출의 원금 상환을 유예할 수 있다.
캠코의 연체채권 매입도 6개월 연장돼 6월 말까지 시행된다. 이 기간 개별 금융회사가 내부 건전성 관리를 위해 개인연체채권의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경우 캠코가 해당 채권을 우선 매입한다. 캠코는 매입 후 일정 기간은 연체가산이자를 면제하고 최장 2년간 상환유예, 채무감면, 장기분할상환 등을 지원한다.
지난해 11월엔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과 금융대출에 대한 원금과 이자 감면 지원 대책도 내놨다. 학자금 대출 채무조정을 신청할 경우 5만원 수준의 채무조정 수수료는 면제되며 원금도 최대 3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연체이자는 전부 감면되고, 최대 20년까지 분할 상환 기간도 늘어난다.
이 같은 조치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소외계층을 포용하려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다만 개인이 진 빚에 대한 책임을 금융기관이 대신 갚아준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다음달 미상각채권에 대한 감면율이 개선되면 제도를 악용하는 채무자가 발생,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부가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시장 기능이 왜곡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채무조정 기준 개선과 함께 보증기관의 회수율을 저해하거나 도덕적해이를 유발하지 않도록 보완조치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