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도, 넷플도…글로벌 IT공룡 역차별 잡겠다더니, 용두사미되나(종합)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IT 공룡과 국내 기업 간 역차별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추진돼온 법안들이 줄줄이 용두사미가 되는 모양새다. 시행을 한 달 앞둔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세부 시행령 공개 이후 핵심 조항이 하나씩 삭제되며 누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 최대 이슈였던 '구글 갑질방지법'도 불과 한 달여 만에 상임위 통합법안 의결조차 불투명해졌다. 공정한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글로벌 기업들의 로비에 흔들린다는 뼈아픈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넷플릭스법, 주요 조치 삭제되나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 유튜브(구글) 등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에게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부여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시행령이 13일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후퇴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초 거론된 핵심조치 등이 삭제되거나 완화되고 있어서다.

지난 9월 입법예고된 시행령 초안에는 법 적용 대상인 부가통신사업자로 하여금 매년 서비스 안정성 확보조치 이행 현황을 정부에 제출하도록 한 내용(시행령 제4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규개위 심사를 앞둔 최근 수정본에는 이 같은 정기적 자료제출 의무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핵심조치인 법 적용대상 선별기준, 글로벌 CP가 기간통신사업자와 협의해 트래픽 경로 변경시 사전 통지하도록 한 대목도 수정 압박이 거세다.

문제는 이 조항이 망 안정성 의무 사항에 대한 이행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시행령안에 규정된 '위반 과태료 2000만원'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핵심 조치마저 삭제될 경우 법 제도의 실효성 확보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시행령 제4항이 삭제되는 대신 서비스 장애ㆍ중단 등이 발생하면 과기정통부가 사후적으로 사업자에게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 경우 사업자가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과기정통부가 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행령이 누더기가 되면서 그 수혜를 글로벌 CP가 볼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글 갑질방지법도 힘 빠져

구글이 앱마켓 구글플레이를 통해 자사 결제수단을 강제하고 이 과정에서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떼겠다고 공식화하며 불거진 구글 갑질방지법도 지지부진하다.

국회 과방위는 지난달 국정감사 기간 중 이례적으로 2소위를 개최해 이를 방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합의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구글이 대형 로펌을 앞세워 국회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법안을 발의했던 박성중 국민의힘 간사도 '졸속처리 가능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급변한 분위기 뒤로는 미국 대사관과 구글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김앤장 등의 로비와 압박 의혹이 따라 붙는다. 과방위 소속 위원들과의 면담에서는 해당 법안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될 수 있다는 언급을 시작으로 통상압박을 시사하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코리아 측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개정안을 처리하면 사업모델을 변경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우리 제도에 반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국회가 백기를 든 셈이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글이 국내 게임개발사를 상대로 자신의 편을 드는 의견을 개진하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당장 내년부터 구글이 인앱결제와 수수료 30% 정책을 강행할 경우 앱 개발사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웹툰, 음원 등 주요 콘텐츠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전날 성명에서 "구글의 불공정 행위는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전반을 위축시키고 관련 산업 종사자의 이해와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조속한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막강한 시장영향력에도 법의 사각지대를 틈타 망 사용료·조세 의무 등은 회피하고 있는 글로벌 IT공룡의 갑질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집행력 확보가 중요하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해외사업자 규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며 "우리 국민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꾸준하게 규제 기조를 이어가고 있음을 해외 사업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로벌 IT공룡에 집행력이 미치지 못해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사례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n번방 방지법만 해도 네이버 등은 불법촬영물 단속이 의무화되지만, 텔레그램은 단속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유한회사로 등록한 해외 IT대기업들은 정확한 매출조차 파악되지 않아 과세에 한계가 있다. 구글은 연초 국세청이 법인세 6000억원을 추징하자 조세심판원에 불복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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