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교양 있는 사람/유희경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 교양 있는 사람이여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 당신을 위해 던져 버렸으니까요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반듯하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선한 이마를 훔친다 경치가 훌륭하군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다린다 어서 그가 말해 주기를 한 층 한 층 올라설 때마다 떠올렸던 영광된 기억과 희망찬 미래의 이야기들을 거기서 얻어 낸 빛나는 영감들 그리고 그가 낚아챈 상념의 거센 발버둥과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몹시 피곤하군요 그는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그러면 교양 있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되지만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내가 기다리는 교양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내가 기다리는 말을 해 주리라는 사실을

■ '교양'의 현재 사전적 의미는 '가르치어 기름' 혹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다. 그런데 '교양'을 뜻하는 영어 'culture'의 원어인 'cultura'의 뜻은 '경작'이고, 독일어 'Bildung'의 의미는 '형성'이다. 즉 '교양'은 원래 '어떤 상태로 잘 가꾸어졌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어떤 상태'란 국가나 민족, 계급, 사회 등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이념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이념의 내면화를 사회화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교양'이란 한편으론 한 개인의 성장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억압과 순종의 결과다. 이는 "교양 있는 사람"에게서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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